임성신 교도
임성신 교도

과거의 나는 그때 그때 마음에 생기는 감정에 솔직하게 반응하는 것을 ‘참 나’라고 생각했다. 그 결과 어떤 인연이나 상황에 상(相)을 만들어 그 상에 주착함으로써 심란한 감정으로 일비일희하는 때가 많았다. 양은냄비에 물이 끓어 오르듯, 혹은 바다에 파도가 일듯…. 그러니 얼마나 실수가 많았겠는가.

그렇지만 지금은 원불교에서 ‘마음공부’라는 것을 배운다. 어느덧 입교한 지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공부 부족으로 실수가 있다. 그래도 이제는 출렁이는 마음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깊이 있게 통찰하며 중심을 잡고 유무를 따져 분석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즉 타자의 시선으로 내 마음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힘을 키우는 것을 나는 심력(心力), 즉 마음의 힘을 키우는 것이라 한다. 

대산종사는 “마음이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다”고 했으며, “어떤 상을 두지 말라”고 했다. 또, “복을 지키는 길은 복을 지은 뒤에 어떠한 순역 경계에서도 상을 내지 않는 것”이라고도 했다. 사실 ‘마음 챙김’이란 삶에 대한 자기 태도이며 삶에 대한 객관적 시각 파악이다. 그러므로 외부 자극에 대해 ‘반응’이 아닌 ‘대응’이 필요하다. 일상수행의 요법에서 “심지(心地)는 원래 요란함이 없건만 경계를 따라 있어지나니, 그 요란함을 없게 하는 것으로서 자성(自性)의 정(定)를 세우자”고 했다. 이 글을 마음고생하는 한 후배에게 전해줬다. 출처를 모르는 그는 나에게 ‘현명하다’고 한다. 덕분에 한바탕 웃었던 경험이 있다. 

이 공부와 이 진리는 내가 과거에 어두운 터널 속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그러니 이 대단한 진리를 모르고 살았다면 얼마나 인생 낭비를 했을까. 진작에 원불교를 알았더라면 주어진 이번 생을 더욱 가꿀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만큼 ‘마음공부’는 나에게 아주 큰 변화를 가져다 줬다. 이제 나는 한순간 흐트러지는 마음에 중심을 잡고 집중할 수 있도록 수시로 체크하는 마음의 공부를 가장 좋아한다. 원불교에 입교해 정신적 고향을 갖게 된 이번 생은 내게 축복이자 은혜다.

/철원교당
 

[2023년 4월 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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