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것들을 붙잡아 간직하다

[원불교신문=이현천 기자] 오래된 폐교를 살려낸 미술관이 사람들의 발길을 이끈다. 건물이 특별히 멋지다거나 유명 작품이 전시된 것도 아니다. 그냥 오랜 시간과 정성으로 꾸준하게 일궈낸 결과가 오늘날 연간 10만여 명을 오게 만들었다.

‘아미미술관’을 검색하면 따라오는 키워드는 인스타 핫플, 가보고 싶은 정원 100선, 당진여행 필수코스 등으로 다양하다. 하지만 그것들로는 이곳의 매력을 모두 표현할 수 없다. 직접 찾아간 아미미술관의 본질은 시간을 붙잡고, 길가는 이의 발길을 붙잡고, 사람의 마음을 붙잡는 ‘공간’에 있다.
 

어떻게 이런 곳에?!
아미미술관은 당진시에 위치한 사립미술관이다. 하지만 시외의 아미산 밑에 있어 처음 방문하는 사람은 ‘어떻게 이런 곳에 미술관이?’ 하는 생각을 한다. 아미산 밑에 있어 ‘아미미술관인가?’ 싶지만 프랑스어 ‘아미(Ami, 친구)’라는 뜻이 담겼다.

네비게이션의 안내를 따라 어느 공터에 도착하니 ‘아미미술관’이라 적힌 플래카드가 어서 오라며 펄럭인다. 바람을 따라가 보니 조그만 정문과 매표소가 맞이한다. 1인당 입장료 6천원, 미술관치고는 저렴한 금액이다. 매표소 앞 한쪽에 있는 빨간 우체통은 개장 초기 관람료를 넣게 했었던 이야기가 담긴 소품이다. 

아름다운 조경을 감상하며 다다른 본관 입구에는 분홍빛 나뭇가지가 가득이다. 겹벚꽃과 한 몸인 듯한 설치 미술작품 ‘나의 정원… 모두의 정원’의 도입이기도 하다. 당진포구 버드나무 가지를 재활용한 이 작품은 입구부터 복도, 교실까지를 화사히 밝힌다. 이제는 피워낼 수 없는 나뭇잎 대신 핑크빛 기러기 깃털이 생명을 더한다.

봄인가 싶었던 공간을 즐기다 교실에 들어서면 시리고 쓸쓸한 느낌의 하얀 나무와 파란 소품으로 가득한 가을과 겨울 정원을 만난다. 이 역시 신축 건물의 조경으로 사용되다 말라 죽어버린 나무들로 꾸몄다. 작품에 보호장비가 따로 없는 설치미술이기에, 사람들은 작품과 교감하며 ‘인생샷’을 남긴다.
 

그대로 두고 쉽게 볼 수 있게
작은 공간인 만큼 실내 관람은 금방이다. 자연스레 이어지는 외부로의 발걸음. 이곳의 아름다운 조경은 박기호 관장이 직접 시간과 정성을 들여 만들어낸 또 하나의 작품이다. 본래 화가로 대한민국미술대전 대상을 수상하고, 프랑스에서 유학까지 마친 전도양양한 예술가였다. 귀국 후 작업실을 찾던 중 운명처럼 이곳을 만난 그는 작품활동을 하며 좋아하는 꽃과 나무를 자연스레 심고 가꿨다. 그것이 한두 해를 지나며 예쁜 정원이 됐고, 어느날부턴가 이곳에 찾아와 구경하고 쉬었다가는 사람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때 든 생각 하나, ‘여기는 혼자 쓸 공간이 아니고, 여럿이 함께 쓸 공간이구나’. 미술관 개관 계기를 전하는 박 관장의 얼굴에는 더 많은 사람들과 이 공간을 나누는 기쁨이 그대로 묻어났다.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러운 문화예술 환경을 선사하고 싶어서 그는 “미술관도 그렇고, 제 예술관도 ‘그대로 두고 쉽게 볼 수 있게’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미미술관의 콘셉트 중 하나는 ‘사라져가는 것을 붙잡아 추억으로 간직하는 장소’다. 폐교되기 전 유동국민학교 시절의 본관, 팻말, 한옥관사, 창고 등을 ‘그대로’ 보존·보수해 전시실이나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것. 심지어 건물 외벽에 그려진 아이들의 낙서나 복도의 당번 칠판까지 그대로 남겼다. ‘그대로 두는 것’에 대해 박 관장이 얼마나 진심인가 하면, 공간을 보수할 때 과거 건물의 유리창을 만든 사람을 수소문으로 찾아내 그 방식 그대로 고쳤고, 한옥관사도 그대로 남겨 아미미술관의 매력포인트로 살려냈다. 과거 숙직실은 이제 작품전시장과 굿즈샵을 겸한다.
 

 

1993년부터 직접 쏟은 정성, 인생샷 핫플 등극
지방문제 해결·문화보급·후배양성 다양한 효과
“밖에서는 멋진 관장, 안에서는 제일(1) 머슴”

 “어려워도 해야 하는 게 내 일”
운동장 한쪽의 창고였다가 작업실이던 공간은 카페가 됐다. 그곳에서 만난 박 관장의 첫인상은 상상하던 미술관장이나 예술가의 모습과 완전히 달랐다. 검은 플리스 재킷에 등산바지, 정글모를 쓴 그는 어릴 적 보았던 친근한 초등학교 관리인인듯 했다.

그는 “우리 미술관을 사람들이 많이 찾는 이유는 ‘관장이 일하기 때문’”이라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밖에서는 미술관장이자 당진문화재단 이사장으로 멋지게 보겠지만, 안에서는 관장이 제일(1) 머슴이어야 한다는 게 내 운영철학”이라는 말도 거듭 강조했다.

그렇다고 어려움이 없을까. 기자의 질문에 그는 미소를 띠더니 “내가 선택한 일이니까 어려운 거예요. 또 어렵지만, 그 어려움을 해결하는 것도 ‘내 일’이잖아요. 어렵다는 말은 해본 적 없어요”라며 웃었다.
 

핫플 하나의 힘
아미미술관에는 주말 하루 1,500명, 벚꽃 시즌이면 하루 3,000명이 찾아온다. 그야말로 전국각지에서 이곳을 보기 위해 당진을 찾는다. ‘핫플’ 하나가 인구 16만 명(2023 행정안전부 주민등록통계)인 당진시에 인구만큼의 방문객을 끌어당기는 것이다.

3개월 단위로 진행되는 전시는 이미 내년 일정까지 꽉 찼는데, 이는 후진 양성에도 진심인 박 관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박 관장은 “유명한 작가보다 열심히 하는 작가 위주로 전시를 진행한다”며 “나도 어렵게 그림을 그려서 그런지, 후배들에게 그런 기회를 주는 게 좋다”고 말했다.

한 사람이 꼬박 30년 세월을 쏟아부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아미미술관은 이제 단순히 작업실을 개방한 전시관에 머물지 않는다. 사람(방문객·정착 예술인)을 불러들이고, 모여든 사람들이 지역에 문화적 혜택을 전하는 공간으로 역할하는 것이다. 

종교계는 ‘공간’에 어떤 철학을 담아 다가갈 수 있을까.
 

[2023년 4월 26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