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참전용사 10대 영웅’ 영상 송출 선정된 딘 헤스 공군 대령
제주도에 한국보육원 설립 계기 제공… 황정신행 종사와 인연

[원불교신문=장지해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일정과 함께 4월 20일 자정부터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 삼성·엘지 전광판에 송출되기 시작한 영상(한·미 참전용사 10대 영웅)에 원불교와 관련된 인물이 있어 관심을 끈다. 바로 딘 헤스(Dean Elmer Hess) 공군 대령이다. 

딘 헤스 공군 대령은 1950년 7월 대구기지에 도착한 이후 한국 공군 전투기 조종사 양성 훈련을 포함해 1년여 동안 250회에 걸쳐 전투 출격하는 등 한국 공군의 대부로 역할 한 인물이다. 특히 그는 1951년 1·4 후퇴 때 중공군의 진격으로 위험에 처했던 서울의 전쟁고아 950명과 고아원 직원들을 미 공군 C-54수송기 15대로 구출해 제주도로 피난시켰는데, 이 지점에서 원불교와 깊은 연관성을 갖는다.
 

전쟁 기간 중 제주도 고아 수용소에서 고아들을 돌보는 황정신행 종사. | 사진 출처=대통령 기록관
전쟁 기간 중 제주도 고아 수용소에서 고아들을 돌보는 황정신행 종사. | 사진 출처=대통령 기록관

제주도로 후송된 전쟁고아를 맡아 돌본 이가 바로 팔타원 황정신행 종사(본명 황온순)이며, 이로써 원불교 기관인 한국보육원의 역사가 비롯됐기 때문이다. ‘유모차 공수작전(Kiggy Car Airlift)’으로도 불리는 딘 헤스 공군 대령의 이야기는 1957년‘전송가(戰頌歌·Battle Hymn)’라는 영화로 제작된 바 있다.

한·미 참전용사 10대 영웅을 담은 30초 분량의 해당 영상은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 삼성·엘지 전광판을 통해 4월 20일부터 5월 3일까지 하루 약 680여 회 송출됐다. 현재 서울시 전광판 120개에서도 동시 송출 중이다. 
 

 

황정신행 종사와 한국보육원의 제주도 시대 주목받다

서울서 제주도로 옮긴 전재 아동 950명 어머니 역할 위해 제주도행
제주도 최초 사회복지시설·국내 최대 규모… UN고아원으로도 불려


황정신행 종사의 제주도행은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황온순 천성을 받들어 90년>에 의하면 이승만 대통령은 황 종사의 두 손을 잡고6·25 한국전쟁 와중에 행방불명된 큰아들 필국의 실종을 위로하면서 “자기 아들만 아들인가. 그 심정도 알만하지만 지금 미국 공군의 헤스 소령(당시 직책)이 오갈 데 없는 전재 아동 9백여 명을 제주도에 데려다 놓았으니 가서 돌봐주구려” 하고 부탁했다. 이에 황 종사는 1951년 2월 제주도로 내려가 재단법인 한국보육원을 설립하고 원장으로 취임했다.
 

이승만 대통령 내외 한국보육원 시찰해 원아 접견(1957년) | 사진 출처=대통령 기록관
이승만 대통령 내외 한국보육원 시찰해 원아 접견(1957년) | 사진 출처=대통령 기록관

딘 헤스 소령이 제주도로 피난시킨 전쟁고아 950명은 제주농업고등학교 교정에 천막으로 설치된 임시 수용소에 머무르고 있었다. 이후 황 종사가 제주도로 내려가면서 1951년 2월 8일 한국보육원으로 명명됐고,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아동보육 시설이 됐다. 제주도 최초의 사회복지시설이기도 했던 한국보육원은 당시 제주도민들에게 ‘UN고아원’이라 불리기도 했다.

이렇게 시작된 한국보육원의 역사는 제주도 시대(1951.3~1956.10)와 서울 이문동·휘경동 시대(1656.11~1970.2)를 지나, 경기도 양주 시대(1970.3~현재)로 이어져오고 있다.
 

 딘 헤스 대령 한국보육원 방문(1961년) | 사진 출처=대통령 기록관
 딘 헤스 대령 한국보육원 방문(1961년) | 사진 출처=대통령 기록관

그간 원불교에서는 황 종사의 교단 안에서의 역할에 주로 초점을 맞춰왔다. 하지만 이번에 한·미 참전용사 10대 영웅에 선정된 딘 헤스 공군 대령 영상 송출을 계기로 황 종사와 한국보육원의 제주도 시절의 이야기는 물론이고, 그의 사회적 이력 및 업적에 많은 주목이 필요해 보인다.

원기99년(2014) 11월 27일 ‘황온순 종사 열반 10주기 추모’를 주제로 열린 제2회 복지선구자 역사포럼에서도 이와 비슷한 의견이 제안된 바 있다. 당시 김범수 사회복지연구소장이 발제를 통해 “대한민국 복지계의 선구자인 황온순 여사의 이력이 원불교에 국한되어 있다는 점이 아쉽다. 오늘을 전환점 삼아 사회적으로 황 여사의 공적이 드러날 수 있는 다양한 연구들이 진행되기를 바란다”고 한 것이다.

황 종사와 한국보육원의 제주도 시절의 이야기는 박윤철 교무가 월간 〈원광〉 552호(2020년 8월호 ‘역사는 거울이다’)에 실은 글에서 보다 상세히 확인된다. 이에 따르면 황 종사와 한국보육원의 제주도 시절 활약상은 1952~1956년 <조선일보>에서도 다수 찾아볼 수 있다.
 

딘 헤스 대령 한국보육원 방문 소 21두 기증(1959년) | 사진 출처=대통령 기록관
딘 헤스 대령 한국보육원 방문 소 21두 기증(1959년) | 사진 출처=대통령 기록관

황 종사는 초기 교단 역사에 있어 수달장자(회상에 물질을 많이 희사한 이)로서 많은 역할을 했다. 하지만 교단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한평생 어린이들을 위한 삶을 살았다. 이화학당 유치원사범과 입학 및 졸업, 화광유치원 교사 봉직, 동대문산부인과병원(현 이화여대 동대문부속병원)내에 탁아소 신설, 1946년 4월 서울 한남동 일본인 사찰 약초관음사를 인수하고 보화원을 설립해 부모를 잃은 전재 어린이들을 돌보는 등의 활동을 통해서다.

특히 1950년 3월에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네 명의 사회사업가 가운데 1인으로 선발돼 영국에 파견된 바 있는데, 당시 4인 중 가장 연장자이자 유일한 여성, 유일한 사회복지시설 책임자로 선발된 상징성을 갖고 있다. 1950년 4월 1일 서울을 출발해 동년 11월 1일 귀국했고, 귀국 후 장남 필국의 행방불명 소식을 접했음에도 고아들의 어머니로서 역할했다.

팔타원 황정신행 종사
딘 헤스 공군 대령과 황정신행 종사
딘 헤스 공군 대령과 황정신행 종사
딘 헤스 대령 내한 젖소 공수(1959년) | 사진 출처=대통령 기록관
딘 헤스 대령 내한 젖소 공수(1959년) | 사진 출처=대통령 기록관

[2023년 05월 03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