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봉탑,
진여 실상의 상징.
각자의 번뇌 망념을 비운 진여 불성.

일원 24상(무봉탑 상): 
혜충 국사가 대종 황제에게 무봉탑을 부탁한 이유는?

다음은 <전등록>에 전하는 이야기로, 육조 혜능의 제자 혜충 국사(?~775)가 입적하기 직전 대종(代宗) 황제와 나눈 대화다.

황제가 “국사가 입적한 이후에 무슨 일을 해주면 좋겠습니까?”라고 묻자 국사는 “저를 위해서 이음새가 없는 무봉탑(無縫塔)을 만들어 주십시오”라고 대답한다. 이음새가 없는 무봉탑이란 형체도 없고 모양도 없는 탑을 말한다. 

선가에서 무봉탑은 봉이 없는 탑, 즉 일원상이다. 진여 실상의 상징어다. 아상, 인상이 텅 비워진 만법일여 만물 일체의 경지다. 무봉탑은 각자의 번뇌 망념을 비운 진여 불성이며, 삼라만상의 일체 만법과 함께하고 있는 불심을 말한다. 

혜충은 진여 불성을 자기 안에서 찾지 않고 밖의 어떤 모양과 형체로 찾는 황제를 깨우쳐주고자 “이음새가 없는 무봉탑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혜충은 하남성 남양의 백애산 암자에서 40년간 거주했다. 숙종과 대종 황제의 국사였기 때문에 혜충 국사라 불린다.

혜충 국사는 일원상을 도형으로 그려 불가에 처음으로 전한 스님이다. 혜충 국사는 일원상 97개를 그려 그의 제자 탐원(耽源) 진응에게 주었고, 탐원은 앙산 혜적에게, 앙산은 이를 위앙종(潙仰宗)의 종지로 삼았다. 위앙종은 스승인 위산영우(潙山靈祐, 771~853)의 ‘위’자와 앙산의 ‘앙’자를 합해서 부르는 이름이다. 
 

일원상에는 97가지 의미가 있지만 요약하면 다음과 같은 6종류로 정리된다. ① 절대의 진실인 불법 그 자체를 상징하여 나타낸 것 ② 수많은 선정의 삼매를 모두 이 일원상에 포함시킨 것 ③ 주객의 차별적인 대립이 나누기 이전의 근원적인 불성의 지혜작용 ④ 일원상이 불법의 대의를 나타내는 문자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것 ⑤ 일원상이 불법의 종지를 나타내고 있는 것 ⑥ 일원상이 그대로 언어 문자를 초월한 경지에서 종지에 결합한 것이다.

앙산은 5가 종파 가운데 일원상을 종지로 하는 위앙종을 창시한 인물이다. 앙산 선사에 의해 일원상이 전수된 내용은 유명한 일화다. 

혜충 국사가 6대 조사로부터 전해 내려온 일원상 97개를 정리하여 제자 탐원에게 전했다. 탐원은 이를 다시 제자 앙산에게 주면서 “국사가 내가 죽고 나서 30년이 지나면 남방의 한 사미가 와서 법을 대흥케 한다 했으니 네가 차제에 전수해 단절치 말라”고 했다. 그러나 앙산은 97개의 일원상을 받아 보고 모두 소각했다. 탐원이 어느 날 일원상을 다시 찾으며 “나의 이 법문은 누구도 모를 것이다. 일찍이 선사와 역대 조사가 그린 것을 그대는 어찌 태웠느냐”고 꾸중했다. 

앙산은 “한 번 보니 그 뜻을 알겠으며 그 흔적에 집착할 것이 없음을 알고 태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탐원은 “그러면 네가 안 것을 내놓아라” 했고, 앙산은 빠짐없이 일원상을 그려냈다. 

<인천안목> 제4권에 ‘97종의 일원상을 그린 것은 혜충 국사이고 이를 학인을 교화하는 수단으로 응용하여 위앙종의 선풍으로 활용한 것은 앙산이다’라고 전하고 있다. 

/한양대학교 명예교수·중곡교당

[2023년 05월 0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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