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에 부정을 더하면 더 강한 긍정이 된다.’ 그의 외로움이 그랬다. 어린 시절, 그는 외로움에 갇혔어도 좌절하거나 무너지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라면, “대장장이가 모루에서 무쇠를 벼루듯이 외로움을 그리움으로 벼리는 내공으로 돌탑을 쌓았다”.

한 층, 그리고 또 한 층 돌탑이 높아질 때마다 그를 가둔 외로움의 울타리 너머에 있는 세상이 보였다. 그가 말을 잇는다. “그 세상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일상적인 것이지만 내게는 커다란 울림으로 오는 아름다운 세상이었다”고. 

그런 운명이었을까, 동화작가 김상삼 교도(법명 상관·대명교당)는 동화작가가 되기 전부터 ‘외로움의 미학을 몸으로 체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외톨이가 된 보리 문둥이
그는 경상도 상주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양반집 한학자였던 백부(그의 백부는 <정산종사법어> 공도편 54장에 나오는 김창준 선진이다)는 종교(원불교)에 귀의해 전라도로 훌쩍 떠났다. 두 집을 거느려야 하는 부친은 산밭을 일구었고, 그렇게 ‘입에 풀칠은 할 수 있었’지만, 그게 삶의 전부는 아니었다. 큰집 형과 그의 공부 때문에 백부의 뜻을 따라 전라도로 이사를 갔다. 그때부터 시작이었으리라. 그는 말 설고 낯선 전라도에서 외톨이가 됐다.

“학교에 가니 아이들이 나와 함께 놀기는커녕 놀다가도 내가 가면 피해버렸어요. ‘경상도 보리문둥이’란 말에다가 한센 환자가 있는 마을에 산다는 이유 때문이죠. 거기에다 내가 입을 열면 경상도 사투리 흉내로 나를 놀렸어요.” 외톨이가 된 그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외로움을 대신 달랬다. 

그의 모친은 혼자가 된 그를 위해 옛날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입담이 좋은 모친은 겨울이면 마을 사람들에게 <한양가>나 <춘향전> 같은 고전을 읽어주기도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그는 상상의 나래를 펴고 꿈나라를 그렸다. 어린 마음에 감성의 씨앗은 그렇게 움텄다. 
 

“동심으로 바라본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그 아름다움으로 어린이들의 마음에 
작은 울림을 주고 싶습니다. ”

현재도 진행형인 ‘문장 공책’
세월이 흘렀다. 주산 실력이 수준급이었던 그는 고향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주산 지도로 2년 반 만에 경북 3개 대회에서 우승을 이끌었다. 시골학교에서 이룬 놀라운 전적은 당시 일간지 박스 기사로 보도됐고, 그 과정을 ‘교육애의 기록(1971년 새교실 대상)’에 응모해 상을 받았다. 그가 글을 쓰게 된 동기다. 

창주문학상(1977)에 동화 <철이와 살구나무>가 당선돼 문단에 등단한 그는, 이후 작품마다 신춘문예(매일신문과 동아일보) 당선과 계몽문학상, 한국동화문학상, 대구문학상, 한국도서저작상 등 각종 상을 거머줬다. 소위 창작열도 작품성도 거침이 없었다. 외톨이의 아픔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동화작가의 탄탄한 밑돌이 되어준 것이다. 그는 지금도 일 년에 3~4권의 장·단편 동화를 창작한다. 

지난해 펴낸 장편 동화 <약밤나무의 백 년 이야기>는 대구지역 우수콘텐츠로 선정돼 2022년 김성도 아동학상을 받았다. 습작기에, 책을 읽으며 공감이 가거나 울림을 주는 구절들을 적기 시작한 ‘문장공책’은 여든살이 넘은 현재에도 진행형이다. 현재까지 50여 권이 넘는 동화책을 펴낸 그가 아이들에게 전하고픈 이야기는 뭘까. 
 

꿋꿋한 내공과 그리움, ‘김상삼 작품’의 특징
동화의 3요소인 ‘주제, 구성, 문체’. 그 또한 이 세 가지 요소로 동화의 흐름을 잡지만, 작품 안에 스며들게 하는 것이 있다. 일명 ‘김상삼 작품’의 특징이랄까. “주제에는 항상 일상수행의 요법 9조가 스며들게 합니다. 작품의 구성 안에는 대소유무의 진리와 인과보응의 이치가 녹아들게 하죠. 그리고 문체는 항상 긍정적이어야 합니다. 밝고 맑고 긍정적인 문체로 어린이들에게 웃음과 용기, 희망을 주려고 하죠.” 작품 속 호흡의 빠르기를 조절하면서 쉼이 필요한 곳에는 꽃밭을 배경 삼는다. 작품 곳곳 꽃밭으로 아이들이 자연과 교감하도록 하는 것, 이 또한 ‘김상삼 작품’의 특징이다.

그의 작품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 세월 따라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그리고 행동문학으로서 약자나 장애를 가진 어린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내용이 담긴다.

“내 작품의 주인공들은 나도 모르게 어린 시절 나를 닮아갑니다. 반짝이는 재치나 영특함은 떨어지지만 우직한 인간미로 외로움 속에서도 꿋꿋한 내공과 그리움 같은 게 묻어나죠.”

<정산종사법어> 공도편 54장
<정산종사법어> 공도편 54장, 정산종사가 김창준 선진에게 내린 한시(道德在天地 天地默無言 唯人用其理 有言有導化 擧止行其道 宗化大流通)는 그가 평생 마음에 담아온 법문이다. 이 법문을 그는 자신의 마음에 대조해 응용했다. 그리고 작품을 창작할 때의 자세로 삼았다. 삶의 좌우명이 된 것이다. ‘나라의 장래는 어린이에게 있으나 어린이는 길을 모르고 / 바르게 자라게 하기 위해서는 (학교)가르침도 있고, 글을 통한 감화도 있으니 / (나는 어린이 장래를 생각하며) 대종사님의 가르침대로 글을 쓰리라.’

지금도 동화창작과 운동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단련하는 그. 어느 곳에 가든 ‘나는 원불교인이다’를 자신있게 말하는 그가 우리에게 전하는 울림이 잔잔하다. 

“세월 따라 내 얼굴은 주름으로 덮여도, 꿈과 설렘이 있는 동심으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동심으로 바라본 세상은 아름답지요. 그 아름다움으로 어린이들의 마음에 작은 울림이라도 주고 싶습니다.”

[2023년 05월 0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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