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개척 20여 년… 원불교 ‘보편종교’로 자리 잡는 데 역할
법회·원불교 선방·대학 출강·교서 번역 등 다양한 활동 펼쳐

[원불교신문=이현천 기자] “누군가 보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까?”
“지금 그런 하찮은 말을 묻나. 정신 차려서 내가 가는 길이 중요하다.”
故 위산 원법우 교무(페터 스탑나우·Peter Stabnau)가 남긴 생전 마지막 말은 일원의 진리를 믿고, 스스로 천도의 길을 준비하는 거룩한 수도자의 표상을 보여준다. 

올해 2월 일원가족 법회에서 “대외활동이나 벌여 가는 교화를 멈추고, 내실을 챙기고 내 할 일을 마무리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선언한 원 교무는 코로나19 확진 후 악화된 건강으로 인해 3월에 입원해 50일 만에 열반에 들기까지 자력생활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주변에 “모두 자력 얻은 공부인이니 걱정하지 않는다. 잘하리라 믿는다”는 위로를 남겼다.

원 교무는 원불교의 첫 서양인 전무출신으로 원기87년(2002), 40세의 나이로 인해 당시 좌산종법사의 특인을 받아 출가했다. 원기80년(1995) 최성덕 정사의 연원으로 프랑크푸르트교당에서 원불교를 만난 원 교무는 당시 살고 있던 레겐스부르크에서 340여 ㎞ 떨어진 프랑크푸르트교당에 왕래하며 원불교 교법을 공부했다. 

이후 사가에서 자신이 배운 내용을 지인들과 함께 나누며 재가 공동체를 이끌었고, 원기81년(1996) 한국 방문시 좌산종법사를 접견하고 출가를 결심했다. 이후 7년의 수학 과정을 거친 후 서원승인을 받은 원 교무는 출신지인 레겐스부르크 현지 교화를 위해 사가를 선교소로 내놓고, 전법사도로 독일에 일원대도를 전하는 데 전신불사했다.

원 교무는 “독일은 국가적으로 사요는 잘 실천됐지만, 사은 사상과 삼학 공부는 부족하다”며 교도들과 함께 광대무량한 낙원건설을 꿈꿨다. 정례법회와 가족법회, 1:1 마음공부와 선공부로 교화활동을 진행하면서 이성전 정토회원과 함께 원불교 마음공부와 게슈탈트 심리치료, 인문·실업계 학교 종교수업, 비엔나 대학·레겐스부르크 대학의 종교학부에 원불교 강좌를 개설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독일 비젠트시(市) ‘네팔 히말라야 파빌리온’에서 원불교 선과 마음공부, ‘Wasser fur die Welt(세계의 물) 재단’과 함께 물 부족 국가 지원사업, 종교인협의회 활동, 우크라이나 난민 지원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교단적으로는 원불교 7대 교서 번역을 비롯, <대산종사법어>와 <원불교교헌>의 번역과 감수를 담당해 ‘원불교’와 ‘원불교 선풍’을 유럽에 전하는 데 기여했다.

레겐스부르크교당 교도들은 원 교무의 열반 소식을 듣고 “원법우 교무님은 우리 곁에 머물다 간 부처님이었다”며 “그 뜻을 잘 이어받아 교당 운영과 신앙·수행에 더 큰 노력을 다하겠다”는 서원을 다짐했다. 

이윤덕 교무(레겐스부르크교당)은 “위산 교정이 남긴 글을 모아 유고집과 기도문집을 발간할 예정이며, 다른 부분은 교도들과 논의를 거쳐 교화에 도움 되도록 만들어 가겠다. 또 위산 교정이 바라던 ‘재가출가 공부인이 스스로 주인 되는 교화’, ‘내가 교당의 주인’이라는 마음가짐과 공부길이 열리게 하겠다”고 전했다.
 

[2023년 05월 0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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