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아 기자
김도아 기자

당연하지만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었던 것들, 지난 3년은 ‘당연한 것들’에 대해 자각했던 시간이었다. 허물없는 서로와의 거리, 마스크 없이 얼굴 가득 채우던 미소. 당연한 것들은 익숙함에 가려졌고, 이에 대한 소중함에는 둔감해졌다. 

개인적으로도 익숙함에 가려진 것이 많았다. 나에게 있어 소중함을 잃었던 것에는 양말과 수건이 있다. 2015년, 그때까지 외국에 한 번도 나가보지 못했던 나는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처음 가본 나라, 처음 접한 문화, 처음으로 혼자 생활해 본 나에게 가장 불편했던 것은 단연 빨래였다. 미국은 한국처럼 집집마다 세탁기가 있는 문화가 아니었다. 차도 없는 나는 빨래를 하기 위해 동네 번화가까지 빨래통을 들고 낑낑대며 걸어가야 했다. 

한국에서는 빨래 후 뽀송뽀송해진 수건이나 양말을 집어다 쓰고 신으면 그만이었는데…. 미국에 살 땐 한겨울 무릎까지 쌓인 눈을 헤치고 빨래를 하러 가다가 길거리에서 엉엉 울어버린 적도 있다. 그러다 그 눈물에 양 볼이 다 얼어버렸지만.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후 부모님께 이런 기억을 웃으며 얘기했다. 그러자 부모님의 표정에 아득한 어떤 것이 내려앉았다. 딸이 불쌍했던 것도 있겠지만 세탁기가 없던 시절 손이 꽁꽁 얼도록 마당에서 빨래하던 당신들의 ‘엄마’가 머릿속에 그리고 마음에 스쳐 지나간 탓이었다. 이처럼 우리에게는 모두 익숙함 뒤로 미뤄두고 좀처럼 꺼내지지 않는, 먼지가 쌓여버린 그런 소중함들이 있다.

지난해부터 본지에 기획 연재되고 있는 ‘감사생활 캠페인’을 담당하며 미처 몰랐던 ‘감사’를 많이 만났다. 한 교도는 교당에 오는 교도들을 위해 철마다 손수 고운 맨드라미를 교당 마당에 심는다. 또 한 교도는 추우나 더우나 원불교 중앙총부 앞 화단의 잡초를 뽑고 쓰레기를 치운다. 어느 교도는 암투병 중에도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 부처님들을 위해 칠판 앞에 서고, 어떤 교도는 바쁜 생계를 이어가면서도 매주 어르신들의 허기를 달래기 위한 밥을 짓는다. 

“원불교 교도라 당연히 해야 일을 했다”는 말로 ‘소중한 일’을 ‘당연하게’ 여기는 이들. 허나 소중함은 자주 꺼내고 표현해야 비로소 익숙함에 속지 않으며 더욱 빛이 난다. 
평소와 다름없는 오늘, 이 글의 마침표 이후에 나에게 주어진 ‘일상의 감사함’을 찾으며 소중함을 깨달아 보면 어떨까.

[2023년 05월 03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