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원 교도
이준원 교도

[원불교신문=이준원 소장] 부모가 자식을 볼 때, 상사가 부하를 볼 때, 스승이 제자를 볼 때, 믿음직하여 마음이 든든한 이와 믿음성이 없어 마음이 안 놓이는 이가 있다. 자존감이 있는 사람은 자신을 믿는다. 자만심은 열등감의 반작용이기에 자신을 믿지 못한다. 자존감이 있기에 “나는 할 수 있어”라며 자신을 격려한다. 남이 안 된다는 일에 도전하는 것을 즐긴다. 이룬 후에는 부모와 상사, 스승에 감사한 마음을 느낀다.

심리학 용어에 ‘라포(Rapport)’가 있다. 상호 공감을 통한 신뢰의 형성을 말한다. 우리 뇌 속에 ‘거울신경세포(Mirror neuron)’이 있다고 한다. 더불어 느끼고 스스로 따라하는 공감과 모방의 기능을 담당한다. 아이는 부모의 표정, 언어와 행동을 보고 느끼며 따라서 한다.

온갖 고생을 다하면서 자수성가한 자식과 부모 도움을 많이 받고 자란 자식 중 누가 더 효자·효녀일까? 부모와 상사, 스승의 자리에 가봐야 심정을 헤아리게 된다. 역지사지(易地思之)다. 감사하는 마음은 몸으로 직접 느끼는 체감(體感)에서 우러나온다. “고맙게 여겨라”라고 말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식물도 사람이 물 주는 것보다는 하늘에서 비가 내릴 때 스스로 쑥쑥 자란다. 자연의 이치다.

소태산은 “스승을 의심하지 않는 것이니”, “나를 믿는 사람이라면 다시 의심하지 말라”(<대종경> 신성품 1장, 변의품 5장)고 했다. 일제 탄압으로 “여기에 오래 머무르기 힘들겠노라”고 했을 때의 심정이나, 교단 초기 10인 1단의 중앙 자리를 비워두며 정산종사를 기다린 때의 심정은 무엇이 다르겠는가? 육신의 부모 유언, 정신의 부모인 스승의 부촉(咐囑)은 오직 자식과 제자가 잘되길 바라는 심정이다.

아버님이 열반한 지 10년이 지났다. 천명(天命)의 나이를 지나 신림교당 창립 당초 이후 일생을 함께 했다. 두 권의 저서를 남겼다. 이순(耳順) 지나 ‘참 나를 찾아서’에 가정과 직장에서의 삶과 교훈을 담았다. 고희(古稀) 지나 ‘구멍 없는 피리소리’에 보조국사 지눌(普照國師 知訥)의 수심결(修心訣)을 통해 일원상 진리를 풀이했다. 믿음으로 공부하는 신해수지(信解受持)의 삶을 보여주신 것이다. 

신해수지란 믿음으로 공부하여 알고, 스승의 법을 받아 닦고 또 닦아, 몸으로 체득하고 마음으로 증득(證得)하는 것이다. 신해수지 후에는 한결같은 믿음으로 받아 행하는 신수봉행(信受奉行)이다.

/솔로몬연구소

[2023년 05월 0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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