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일진 교도
손일진 교도

[원불교신문=손일진 교도] 나의 기도생활은 십년 전, 아들이 고3 때 시작됐다.

대중이 함께하는 교당 기도는 보통 오전 9~10시에 있어, 직장 생활을 하는 나는 참석이 어려울 때가 많았다. 수험생을 위한 백일기도라고 해도 평일 오전 참석이 어려워 신청을 못하고 있는데, 아이가 고3인 걸 아는 교도님들이 ‘왜 수능기도 신청을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내가 “엄마인 제가 기도를 못하는데 어떻게 신청을 합니까” 했더니, 교도님들이 “신청만 하면 교무님과 교도님들이 함께 기도해 준다”며 자꾸만 명단을 적어내라고 했다.

그렇게 등 떠밀리듯 기도 신청을 해놓고 차마 교무님께만 아이 기도를 미룰 수 없어, 퇴근 후 교당에서 백일기도를 한 것이 시작이 됐다. 기도 기간, 나는 평소에 가졌던 ‘아이에 대한 이기적인 작은 욕심’이 ‘큰 서원’으로 변하는 기도의 위력을 체험했다. 또 기도를 통해 아이가 사은님 은혜에 크게 보은하는 대보은자가 되리라는 믿음도 강해졌다. 

기도 기간 중 또 하나의 큰 경험은 바로 ‘자력 수행’이다. 나는 정해진 기도 시간이 근무 시간이면 ‘출근을 해야 하니 기도를 못한다. 일요일에 가정의 대소사라도 있으면 법회는 당연히 못가는 거지’ 하면서, 원불교에 대한 믿음만 가지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수행 정진이 없었다. 
 

기도를 통해 아이가
대보은자가 되리라는
믿음도 강해졌다.

그런데 백일동안 혼자 기도하면서, 회식이나 모임이 있는 날이면 출근 전 기도를 먼저 챙겼다. 장거리 출장이라도 잡히면 기차 안에서, 때로는 운전을 하면서, 그것도 놓치면 샤워를 하면서라도 기도심을 챙기게 된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더이상 직장이나 가정을 핑계대며 기도를 못한다고 할 수가 없었다. 

기도 발심을 챙기며 바로 이어 둘째를 불공의 대상으로 삼아 천일기도를 하게 됐고, 학업과 학교생활이 불안하던 둘째도 무사히 대학을 갔다.

결혼하고 한집에서 함께 지내며 모셨던 시부모님 그리고 시누이 가족이 원불교로 입교했다. 그리고 친정아버지 천도재를 모시면서 엄마와 동생들도 입교하고, 또 엄마가 열반하시면서 다시 동생들 가족과 조카들까지 원불교로 입교했다. 이렇게 가족으로 만난 우리가, 영생의 법연으로 다시금 인연을 잇게 된 비결을 나는 ‘기도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내 기도 생활이 좋아 보였는지, 교화단 활동을 함께하는 도반들도 두 번째 천일기도를 함께했다. 단원들과 함께 한 기도 덕분에 지난 원기105년 교화단 조단 때는 단원을 불려 2개의 교화단으로 분단도 했다.

큰 아이 수험생 백일기도 이후 9년 동안 나는 천일기도를 두 번, 백일기도를 네 번, 그리고 지난 2월 12일에는 두 개의 교화단이 함께 하는 이방·곤방 300일 기도를 결제했다. 그간 내 기도 생활을 돌아보니, 힘들기만 했던 그 많은 일과 인연이 모두 나를 진급시켜 주기 위한 수행길의 동무였다.

10년 전 나의 첫 기도문에 등장한 불공 대상자는 6명이었는데, 이제 와  세어보니 가족과 직장 동료 등 모두 40명이 넘는다. 나는 기도 생활로 나날이 새로워지는 수행을 하고 있다.

/대구교당

[2023년 05월 0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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