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한국 이주, 소태산갤러리 영어선방 지도
“공익심, 미국에서는 낯설고도 놀라운 개념”

[원불교신문=민소연 기자] 매월 마지막 화요일, 서울시 동작구 흑석동 원불교소태산기념관에 선복을 입은 나이 지긋한 외국인 남자가 들어선다. 소태산갤러리에서 영어선방을 지도하는 원은수 교도(Eric Eronin, 미주총부교당)이다. 뉴욕 태생의 그는 원기102년 입교, 3년 전 아내 원혜은 교도와 함께 한국으로 이주했다. 춘천 북한강변에 자리잡은 그는, 원불교를 ‘선(禪)’으로 교화하고픈 서원으로 매월 서울에 와 외국인 선객들을 맞는다. 

원불교와의 인연은 ‘선’에서 시작했다. 30여년 전 ‘화가 많고 조급할 땐 선을 해보라’는 남동생의 권유로 ‘선 유랑’이 시작됐다. 미국에서 ‘좀 한다’는 곳들을 찾아 명상센터나 종교 문턱을 넘었고, 간화선, 인도선, 일본선 등 온갖 선을 접했다. “어느날 집에 가는데, ‘Won Dharma Center(원다르마센터, WDC)’ 간판에  ‘Meditation(선)’이라는 단어가 보이더라고요. 아내와 찾아가 유도성 교무님을 만났습니다, 그때 단전주선을 하며 단전의 존재도 처음 느꼈어요. 제가 했던 어떤 것보다 훨씬 높고, 깊은 선이었습니다.”
 

소니 워크맨으로 챠크라 카세트테이프를 듣던 1980년대부터 찾아온 길. 알고 보니 집에서 불과 8마일(12㎞), 멀지 않은 거리였다. 한두 번 가고, 발 따라 마음도 붙이니 진짜 이웃이 됐다. 교무들은 ‘한국음식 드시러 오라’고도 했고, ‘김장 좀 도와달라’고도 했다. 자동차엔지니어이자 사업가였던 경력과 재주는 원다르마센터 곳곳에 도움이 됐다. 

“매일 5시 30분 아침 좌선에, 교무님들말고는 제가 유일한 참석자였어요. 한국으로 올 때까지 2~3년간 매일 함께 하며 ‘원불교 선’에 푹 빠졌죠. 

이 순도 100% 미국인 입에서 ‘Je-ong(정)’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그리고 ‘Family(가족)’이라는 단어를 쓰며, ‘우리는 가족이 됐다’는 말로 원불교에 대한 인상을 전한다.

“원불교의 훌륭한 면은 참 많아요. 소태산 대종사가 ‘우리는 이미 다 이루었다’하시며, 일하고 들어온 이들을 두고 ‘저들이 우리집 부처’라 한 법문은 감동이죠. 또 병원, 학교 등으로 우리의 실제 삶 속에 교리와 말씀에 녹아있고요.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일상 수행의 요법’ 9조입니다. 앞의 8개는 ‘나’에 초점을 맞추는데, 마지막 9조 공익심은 타인과 내가 속한 공동체를 위한 거잖아요. 미국에서는 정말 낯설고도 놀라운 개념입니다.”

영어선방을 맡은 것도 그 ‘공익심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다. ‘선’이 보은하는 길, 세상을 맑히는 일, 또 교화에 있어 아주 확실한 키(Key)라 여긴 것이다. “이미 종교는 하락세인데다 젊은 세대가 없으면 살아남기 힘듭니다. 그럼 어떻게 젊은이들과 외국인들을 교화할까요? 선이 답입니다. 법회나 교리로 사람들이 오긴 어렵지만, 선을 하러는 와요. 10명이 앉으면 3명이 관심을 보이고, 그 중 1명은 교도가 됩니다.”

사업가였던 그는 최근 푸드트럭 격인 ‘팝 스모크 트레인(Pop smoke train)’을 직접 제작, ‘진짜 미국식 바비큐’ 사업을 시작했다. 맛도 맛이지만, 판매전략이 확실한 그. 원불교 역시 그 ‘판매전략’이 필요하다고 힘줘 말한다. “사람들을 어떻게 ‘Hook’(훅, 걸리게 하다)할 것인가, 그 뒤엔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생각해야죠. 또 교당에 오면 방석에서 선을 하도록 하고, 외국어 안내도 좀 더 상세할 필요가 있어요.”

자신의 고향인 뉴욕을 떠나 원불교의 고향인 한국에 온지 3년. 세계의 눈이 서울로 쏠리는 이때, 그는 돌고 돌아 오래 기다린 선물과도 같다. 지극한 정성과 공익심으로 새로운 교화의 장을 연 원 교도, 이 ‘미국인 원불교 선 지도자’의 활약은 이제부터다.

[2023년 05월 0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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