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유치원에서 원장이 낙담하고 있다. 친구가 조언을 해준다.
“빨리 유치원 접고 노인정 차리라니까. 오은영 박사도 요즘 ‘금쪽같은 내 부모’ 찍잖아.”
“그러게. 옆 건물도 키즈카페 접고 기원 카페 열어서 대박 났다던데.”
“참, 우리 형 장인어른 동생분 손자녀가 돌잔치를 하거든. 구경갈래?”
“와, 돌잔치라는 단어도 5년 만에 들은 것 같은데.”
“초대장도 R석으로 간신히 구했어. 사직구장에서 한대.”


유튜브 ‘킥서비스’의 <2033년> 시리즈의 내용이다. 불과 10년 뒤 일이라기에는 오버스럽다 느낄 수 있겠지만, 아마도 젊은 세대일 것이라 추측되는 3천5백 개 댓글 분위기는 그렇지 않다. 충분히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2033년의 어린이를 설명하는 뼈아픈 댓글도 있다. ‘인구감소, 고령화로 이대로 가면 소득 대비 세금 30% 이상 내 줄 귀한 세대’. 대한민국에서 가장 연약하고 힘없는 소수자 어린이들, 어떻게 살고 있을까.

소아과와 어린이집이 사라졌다
2022년 대한민국 출산율 0.78명, 어린이와 함께 많은 것이 사라졌다. 대표적인 곳이 소아과와 어린이집이다. 3월 29일 대한의사협회가 소아과 폐과를 선언해 충격을 줬다. 이미 부모들은 소아과 부족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의료 인프라가 집약된 서울에서도 새벽부터 진료 대기표를 받는 ‘소아과 오픈런’이 일상이다. 어린이집도 마찬가지다. 2012년 4만2천527개소에 이르던 어린이집은 2022년 3만1천507개소로, 무려 26%에 달하는 1만1천여 개소가 줄었다. 

한때 모두 이해받고 배려받는 어린이였으나, 지금의 어린이들은 그렇지 못하다. 우리는 이들을 ‘금지’하고 있다. 5월 4일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23개월 아들과 함께 국회 단상에 올라 ‘노키즈존 폐지’를 주장했다. 공공시설인 국립중앙도서관도 초등학생까지는 출입할 수 없고, 많은 식당과 카페들이 ‘노키즈’를 내걸고 있다. 배려보다는 거부를, 수용보다는 배제를 먼저 겪는 나라에서 대한민국 어린이들은 자신들을 문젯거리이자 기피 대상으로 배우며 자란다.
 

소아과와‧어린이집 사라지고 ‘노키즈존’으로 거부받는 어린이들
스웨덴 출생률 증가 비결, 남녀임금격차 줄인 공동육아휴직제
늘어나는 공동육아나눔터, 함께 길러내는 ‘타자녀 교육’ 시대

스웨덴 출생률 상승 비결 공동육아휴직제
부모의 고민은 더욱 현실적이다. 저출생의 주된 원인으로 높은 집값, 사교육비 등을 꼽지만, 사실 당장은 ‘누가 키우냐’다. 왜 엄마만이, 그것도 눈치를 보며 휴직해야 할까. 물론 육아를 하고픈 아빠들도 있다. 허나 ‘아빠의 육아휴직’이 불가능에 가까운 건, 세계 최고의 성별 임금 불평등 때문이다.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는 31.1%, 평균 11.9%인 OECD 34개 회원국 중 압도적 1위다. 남녀 근로자를 각각 줄 세웠을 때 딱 중간의 남성이 100만 원을 받으면 여성은 68만9천원을 받는다. 반면 ‘라떼파파(육아에 적극적인 아빠)’의 나라 스웨덴의 성별 임금 격차는 7.2%, 어느 쪽이 휴직해도 가계소득이 크게 변하지 않는다. 스웨덴은 1970년대부터 아빠가 육아휴직을 쓰지 않으면 3개월이라는 기간이 사라지게 했다. 1998년 1.5명이던 스웨덴의 출생률은 2019년 1.66명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한국은 1.46명에서 2022년 0.78명으로 반 토막이 났다. 
 

현재 우리의 육아휴직 구조는 직장에서도 어려운 문제다. 저임금의 여성 직원이 육아휴직을 하니, 그 임금으로 기간 한정의 대체인력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자리가 ‘붕 뜨게’ 되니 회사와 동료들의 시선이 곱지 않고, 이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거나 아예 출산을 포기하는 것이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인구문제 연구소가 ‘지구에서 가장 먼저 소멸하는 나라’로 꼽은 대한민국. 국가도 부랴부랴 저출생 극복을 위해 이런저런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피부로 와닿지 않는다. 2021년 기준 0~12세 대상 ‘아이돌봄지원사업’ 이용률은 전체의 2.1%에 불과했다. 그나마 0~5세 대상 영유아보육사업은 22.5%, 3~6세 유아교육 사업은 11.2%가 이용했지만, 초등 대상 다 함께 돌봄센터와 초등돌봄교실 사업 이용률은 각각 0.3%, 4.9%로 나타나 뒤떨어진 현실감을 보여준다. 

대신 내 아이를 ‘우리 모두의 아이’로 키우는 공동육아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공동육아나눔터는 2012년 불과 23개에서 2022년 387개로 훌쩍 늘어났다. 종교 등 민간도 움직이고 있다. 지난해에는 종교 지도자들이 앞장선 ‘저출생대책국민본부’가 출범했다. 권도갑 교무가 최일도 목사, 마가 스님과 함께 자문위원으로 참여, “전국의 종교시설에 어린이 육아돌봄센터 5,000개를 설립하겠다”고 밝혀 환영 받았다. 

‘지금 행복하다’는 어린이 10명 중 8명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어린이가 가장 행복했을 때는 언제일까. 의외로 아이들은 ‘부모님과 함께 놀러 갔을 때(45.8%)’를 꼽았다. ‘갖고 싶은 선물을 받았을 때(19.6%)’나 ‘친구들과 놀았을 때(14.4%)’보다 월등히 높다. 어린이들의 장래 희망은 의사 또는 수의사(13.7%)가 가장 많았으며, 유튜버와 같은 콘텐츠 크리에이터(12.2%), 운동선수(11.1%)가 뒤를 이었다. 가장 큰 고민은 ‘학업에 관한 것(37.7%)’이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15.1%)’, ‘하고 싶은 걸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것(11.1%)’도 손에 꼽혔다. 

노키즈존과 청소년범죄, 학교폭력이 만연하고, 자살률과 장기불황으로 삶의 만족도가 10점 중 5.9점(2023년 통계청)에 불과한 대한민국. 하지만 아이의 마음은 맑고 푸르다. ‘지금 행복하다’는 어린이는 10명 중 8명. 43.2 %는 ‘우리나라가 자랑스럽다’고 했고, ‘다시 태어나도 우리나라에서 태어나고 싶다’고 답한 비율은 무려 87.1%에 이른다. 

올해는 어린이 해방선언 100주년이자 어린이날이 만들어진 지 101년 된 해다. 방정환 선생은 어린이를 대하는 마음을 두고 ‘항상 10년 후를 생각하라’고 당부했다. 원기118년 ‘원불교 어린이’들은 얼마나 될 것이며,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이들을 향한 우리의 자세는 어떠한가. 이제, 이웃과 지역, 국가와 세상의 아이 모두를 함께 길러내는 ‘타자녀 교육’의 시대다.

[2023년 05월 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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