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진 교무
김유진 교무

[원불교신문=김유진 교무] 지난해에 신규 교무로 부임하며 ‘친구 같은 교무님이 되자’는 다짐을 했다. 하지만 처음으로 아이들을 대하다 보니 실수가 있었다.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앞서 과하게 잘 해줬던 것이다. 아이들이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고, 사달라는 대로 다 사주다 보니 아이들은 점점 나를 쉽게 대하면서 함부로 대하기도 했다.

특히 아이들은 내가 ‘법회’라는 말만 꺼내도 “싫어요!”를 외쳤다. 그 모습을 보며 ‘아차, 큰 잘못을 했다’ 싶었다. 법회를 보기 싫어하는 것에 대해서는 다른 형태와 방법으로 소태산 대종사의 가르침을 전할 수 있으니 괜찮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아이들이 매주 교당에 오자마자 “마라탕을 먹으러 가자”고 조르는 것이었다.

‘마라탕’에는 문제가 없다. 다만 법회는 불같이 싫어하면서 마라탕을 위해서는 비가 와도 가겠다는 아이들의 반응이 나에게는 고민거리였다. ‘어떻게 하면 마라탕보다 함께 마음공부 하는 시간이 더 좋아지게 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마라탕을 먹지 않는 방법만 생각했다. “너희 마라탕 금지야”, “교무님은 마라탕 먹으러 안 갈 거야”라는 말도 단호하게 해 봤다. 하지만 말만 그랬을 뿐 칼같이 거절하기는 어려웠다. 
 

마라탕이 법회를 돕는 
조력자가 됐다. 
없앨 마라탕이 아니었고 
공부 기회로 키울 일이었다.

어느 날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마라탕 먹으러 가자”고 하는 아이에게 “너 마라탕 먹으러 교당에 오니?” 하고 물었다. 아이는 “아니요. 교무님 보러 와요”라고 대답했다. 그 말에 나는 좋다고 마라탕 프리패스권을 손에 쥐여주고 말았다. 말만 하면 원하는 대로 되니 아이들이 마라탕 염불을 멈출 이유가 없다.

마라탕에 시달린 지 몇 달, 아직 임시방편이지만 나름의 방법을 찾았다. “15분 동안 명상하면 사줄게”, “교당 대청소가 있어서 못 갈 것 같아. 하지만 너희가 도와주면 끝나고 같이 갈 수 있어”, “마라탕 먹는 대신 숙제가 있어. 집에 가면 부모님께 배운 대로 부처님이라고 부르는거야. 할 수 있지?” 

방편의 위력은 대단했다. 아이들은 ‘마라탕’을 얻기 위해 내가 함께하자고 제안하는 것에 기꺼이 응해줬다. 지긋지긋했던 마라탕이 법회를 돕는 조력자가 된 것이다. 없앨 마라탕이 아니었고, 공부 기회로 키울 일이었다.

오로지 마라탕을 위해 교당에 오는 것 같아서, 나보다 마라탕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아서 밉고 섭섭하다가도 아이들이 눈감고 15분 동안 앉아있는 모습이나 걸레를 들고 “교무님 또 어디 청소할까요?” 하는 목소리를 들으면 귀엽고, 마라탕 가게로 함께 향하게 된다. 

‘그래, 부처님이 마라탕을 드시고 싶다는데 사드려야지.’

아직은 마라탕의 힘을 빌려 경계를 넘어가고 있다. 걱정도, 고민도 많지만 먼저 나서서 법당을 치우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느려도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구나 싶다. 

마라탕이 있어도 함께하는 시간에 가치를 느끼고, 마라탕 없이도 즐거운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마라탕과 싸운다.

/동대전교당

[2023년 05월 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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