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혜 사무처장
조은혜 사무처장

[원불교신문=조은혜 사무처장] 황윤 감독은 ‘잘 살아야겠다는 용기를 얻고 힘을 주는 동물들의 이야기를 영화를 통해 전달하는 통역사’로 불린다. 그런 그가 최근 포기하지 않고 내놓은 영화 <수라>를 보는 건 황홀함이자 형벌이다. 아름다운 것을 본 죄로 평생 사랑하고 지켜야 하는 형벌.

‘수라 갯벌에 든’ 사람들은 전북 군산 옥서면 남수라마을 인근 갯벌과 연안습지를 “수라야”라고 부른다. ‘수라야’는 ‘비단에 수를 놓은 듯 아름답다’는 뜻으로, 2003년부터 지금까지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을 이끄는 오동필 단장이 붙인 이름이다. 새만금 방조제 공사로 물이 막혀 행정구역상 갯벌의 기능을 잃었다고 평가되지만, 생태계 보고이자 생명을 품은 갯벌을 제 이름으로 불러주면 언젠가 살릴 수 있다는 믿음이 기반이다.

1991년 시작된 간척사업으로 8조원 이상을 들여 2010년 4월 준공된 ‘새만금’은 ‘세계 최대 규모의 간척사업에서 우리 사회갈등의 대명사로 전락한’ 우여곡절의 주인공이다. 겨우겨우 방조제는 완공됐지만, 지금도 수많은 환경이슈와 논란의 중심에 있다. 대표적인 것이 새만금 방조제로 물길이 막혀 하나둘 사라진 갯벌이다. ‘수많은 바다 생명들이 마지막 숨을 내쉬듯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린 채’ 죽어갔다. ‘없어서는 살 수 없는’ 은혜를 배은한 ‘대량 학살’이었다. 이후 10년이 지나는 동안 사람들도 그곳을 떠나고 잊었다. 

그렇게 죽은 땅이 됐을 것으로 생각했던 곳에서 ‘생명의 아름다움을 본’ 순간, 습관처럼 챙겨간 카메라를 꺼내며 황 감독은 깨달았다고 한다. 이제 이것을 평생 지켜야 한다는 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킬 힘을 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리고 이 ‘황홀한 형벌’을 나누기 위해 보여줘야 한다는 것을. 

뱃사공이 노를 젓는 모습과 비슷한 주걱부리를 가진 저어새는 전 세계 2,400여 마리 남은 멸종위기종이다. 하지만 수라 갯벌에는 150여 마리나 무리 지어 있다. 검은머리갈매기, 쇠제비갈매기, 꼬마물떼새, 흰발농게 등 멸종위기에 처한 생물 40여 종도 ‘여전히’ 살고 있다. 나는 매립공사 중인 땅 옆에서 어미를 기다리는 새끼 쇠제비갈매기의 사랑스러움, 툰드라에서 호주까지 장거리 비행 중 쉬어가는 도요새 무리가 날아오르는 군무의 황홀함을 보고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카메라에 담을 수 없는 갈대밭 사이를 걸을 때의 촉감, 부드러운 흙과 물을 만질 때의 느낌”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수라 갯벌에 드는 사람들을 따라나서게 된다. 

갯벌은 다양한 멸종위기 야생생물을 지키는 터전이자 홍수와 태풍을 막아주는 방파제 역할을 해왔다. 갯벌의 흙과 모래는 스펀지처럼 많은 물을 흡수하고, 습지 식물이 바람의 힘을 흡수해 파도의 힘을 약하게 만든다. 바다의 콩팥이라 불릴 만큼 자연정화 능력도 뛰어나다. 갯벌에 사는 수억 마리의 식물 플랑크톤은 산소를 만들고, 숲의 10배, 농지의 100배에 해당하는 탄소 저장소로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 새롭게 주목받는 ‘자연이 준 선물’이기도 하다. 사라진 갯벌 복원사업이 시작된 이유다. 지구 생물다양성 보존과 멸종위기 철새의 기착지로 한국의 갯벌 4곳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그런데 ‘수라’는? 문화재청에서 신청을 포기했다. 확정도 안 된 신공항 건설 계획 부지라는 게 이유다. 살아있는 수라, 죽이지 말고 사랑하자.

/원불교환경연대

[2023년 05월 10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