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천교당 김효명 교도
송천교당 김효명 교도

[원불교신문=민소연 기자] “어머님, 저 교당가도 돼요?”
며느리 말에 깜짝 놀란 김효명 교도(송천교당). 원불교의 ‘원’자도 모르던 아이라 교당에 나오라면 부담일까 싶었더랬다. 그런데 어떻게 어렵다면 어려운 시어머니를 보고 ‘교당을 가봐야겠다’ 싶었을까. 이 예쁜 며느리(김서진 교도)는, 얼마 전 용인으로 이사할 때까지 아들(보원)과 손자녀들(여은·여경)까지 함께 교당에 나왔다. 

가족교화는 그의 집안 대대로의 유산이었다. 위로는 외할머니부터 아래로는 손자녀들까지 5대에 이르는 원불교 패밀리, 재가와 출가 두루 듬직하다. 그의 어머니(故 이경천 정사)가 그토록 바라던 전무출신을 동생(김인소 교무)와 조카(김민성 교무)가 하고 있으며, 그의 남편 전지완 교도는 송천교당 전 교도회장, 동생 김상현 교도는 현 전곡교당 부회장, 제부 이광성 교도는 원무를 역임했다. 특히 남편과 제부는 원불교 집안에 장가와 주인으로 자란, ‘마누라가 예쁘면 교당 말뚝 보고도 절한다’를 몸소 증명한 교단의 사위들이다. 

“애초에 외숙모가 시어머니인 외할머니(故 전도인행 교도)를 총부교당으로 이끄셨대요. 특히 어머니가 교화를 얼마나 잘하셨는지, 캐면 줄줄 따라온다고 별명이 ‘고구마 줄기’였어요.”

외할머니에서 어머니, 그리고 자신에게 대물림된 가족교화, 그는 가장 어려울 때 그 힘을 여실히 느꼈다.

“결혼 후 애들 낳고 이사하면서 교당을 좀 못 나갔어요. 그러다 많이 아팠죠. 특히 얼굴이 붓고 열꽃이 내려가지 않았는데, 엄마가 ‘매일 기도해라’고 하셔서 따랐더니 좀 낫더라고요. 남편에게 ‘나 교당가고 싶어’라고 말했죠.” 그 길로 나갔다 돌아온 남편 손에는 수원교당 약도가 들려있었다. 일요일이 되자 얼굴을 동여매고 뒤쪽 의자에 슬그머니 있다 나왔다. 몇 주 지나 교무님께 인사를 했고, 언뜻 보니 부엌에 일이 많아 앞치마부터 둘렀다. 무슨 일만 있으면 오고, 없어도 와서 놀던 기특한 새댁. 병은 어느새 씻은 듯 나아 있었다. 엄마의 기도가 딸을 교당으로 다시 불러낸 것이리라.

“몇 년 뒤 서울로 오며 교당을 두어 달 못 나갔는데, 갑자기 송천교당에서 전화가 와서 ‘얼굴 좀 봅시다’ 하시는 거예요. 끝까지 잡아떼셨지만, 아마 엄마가 전화했겠죠.”

그길로 송천교당 교도로 살게 됐으니 이번에도 엄마의 작전은 성공이었다. 이렇게 늘 간절했고 적극적이었던 엄마의 가족교화를 닮고 싶은 마음. 그 감사와 은혜가 대대손손 이어지도록, 김 교도는 오늘도 ‘엄마의 기도’를 올린다.

[2023년 05월 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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