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장지해 기자]  붓으로 써 내리는 글에는 반드시 그 글씨를 쓰는 사람의 성정이 담긴다. 그래서 서예(書藝)일 것이다. 글씨를 붓으로 쓰는 예술이라는 뜻의.

하지만 이 예술은 붓만 가지고 완성할 수 없다. 벼루와 먹, 그리고 종이가 함께 필요하다. 그래서 문방사우(文房四友), 문구에 필요한 네 가지 친구라고 했다. 인사동으로 발길을 옮기다 불쑥 어떤 생각을 떠올린다. 어릴 적, 미술 시간 준비물로 벼루 하나, 붓 한 자루를 가져봤던 기억이다.

‘인사동’은 언젠가부터 ‘전통문화의 거리’를 상징하는 고유명사가 됐다. 그리고 그곳에는 고유명사의 의미를 증명하고 수긍케 하는 곳이 있다. 고종·순종 황제도 이곳에서 제작하고 판매하는 붓을 썼다. 이당 김은호, 천경자 작가도 단골이었다. 한반도 최초의 필방이자 110년 역사를 ‘지켜내’고 있는 구하산방(九霞山房)이다. 
 

1913년생, 한반도 최초의 필방
‘구하’는 어느 중국 시에 쓰인 ‘구하산’이 비롯이다. 그러니 구하산방은 쉽게 말하면 ‘신선이 머무는 산중의 공간’, 즉 선계를 뜻한다. 새하얀 붓털들이 마치 선계의 구름인 듯 와닿는 이유다.

홍수희 구하산방 대표는 이곳의 110년을 설명하면서 가장 먼저 “이사를 엄청 많이 다녔다”고 말했다. 긴 세월이니, 우여곡절도 당연히 많을 터다. 구하산방의 첫 터전은 서울 진고개다. 서울역에서 남산으로 이어지는 현재의 충무로 일대를 칭하던 말로, 당시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고 할 정도로 질퍽거려 붙은 이름이란다.

진고개에 구하산방이 생긴 것은 1913년. 당시 주인은 동양전통문화에 조예 있던 히로시마 출신의 가키카 노리오라는 일본인이다. 그는 부산에서 고급 지필묵 수입가게인 ‘구하당’을 차려 운영하다 서울에 진출해 이름을 구하산방이라 지었다. 해방 이후 점원이던 홍기대가 가게를 물려받았고, 이것이 홍기대의 손아래 당숙인 홍문희에게 넘어갔다가, 동생인 홍 대표로 이어졌다. 그사이 구하산방은 명동(옛 코스모스백화점 인근), 소공동(조선호텔 근처), 안국동, 견지동, 망원동 등을 거쳐 30여 년 전부터 인사동에 자리를 잡았다.

본래 건설회사에서 행정 일을 하던 홍 대표는 ‘본의 아니게’ 이 일을 하게 됐다. 그가 ‘본의 아니게’라고 표현하는 이유가 있다. 퇴근 후 종종 가게에 들르던 동생에게, 형은 왕왕 “잠깐 있어라”고 하고 가게를 나섰다. ‘잠깐’은 점점 길어졌고, 술과 사람을 좋아하는 형을 대신해 가게를 지키던 동생은 자연스럽게 가게에 안착했다.
 

돈 버는 일 아닌 ‘문화 사업’
이십 대 중반에 시작했으니, 5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선계’에 머무는 격이 됐다. 하지만 그 머묾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그는 “(상황으로 보면) 문을 닫아야 원칙인데, 어떻게든 버티고 있는 것”이라며 “버틴다는 게 말은 쉬워도, 눈물 나는 얘기”라는 말로 슬쩍 마음을 내비쳤다.

그럼에도 무엇인가 버티게 하는 힘이 있어 지금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 힘을 홍 대표는 ‘한반도 최초의 필방’이라고 짚었다.“‘한반도 최초의 필방이 문을 닫았다’는 말을 용납할 수 없다”는 이야기도 덧붙었다.

또 하나의 큰 힘은 몇십 년째 이곳을 찾는 손님들이다. “여태 계시고, 여태 지켜주시고, 여태 굳건하시네요.” 구하산방의 역사에는 손님들의 세월도 함께 쌓여간다.

돈을 벌기 위한 일이었다면, 지금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필방의 역할을 “돈 버는 일이 아닌 문화 사업”이라고 분명히 정의한다. 그런 생각이니, 과거 구하산방은 가난한 예술인들에게 비빌 언덕이자 의지처도 됐다. 붓과 종이를 만지작거리는 손만 봐도, 그는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렇게 종이며 붓이며, 외상으로 물건을 내준 적이 여러 번이다. 다들 이제는 누구나 알만한 유명 교수며 작가가 됐지만, 홍 대표는 그들의 이름을 굳이 밝히지 않는다. “힘든 시절의 이야기를 드러내고 싶지 않아 할 수 있어서”다. 예술가의 자존심을 지켜주려는 배려다.

예술가들에 대한 찐 사랑이 있어 비롯되는, 그가 안타깝게 여기는 요즘 모습 하나. 바로 ‘그림과 글씨를 좋아해서 그리거나 쓰는 이는 줄고, 돈을 위해 예술을 하려는 이들이 많아진’ 세태다. 이를 홍 대표는 “돈을 벌기 위해 짧은 시간에 성과를 내는 소식은 반갑지 않다”며 “그런 사람들은 예술가가 아니라 사기꾼이 되기 십상”이라고 단호히 표현했다.
 

“네 그림을 그려라”
일곱 평 남짓한 가게에는 문방사우가 빼곡하다. 그중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벽 한 면을 가득 채운 붓들이다. 몇 종류나 되냐는 물음에 ‘수천 종’이라는 답과 함께 “남들이 좋다고 누구에게나 좋은 것은 아니다”라는 말이 돌아온다. 구하산방에서 ‘붓을 추천해달라’는 말에 무조건 비싼 붓이 추천되지 않는 이유다. “사람마다 자신에게 맞는 붓이 있어요. 그걸 아는 사람은 꼭 나에게 붓을 골라 달라고 하고, 내가 골라주는 붓을 좋아해요.” 

‘다른 데서 산 붓으로 그렸을 땐 늘 떨어졌는데, 사장님이 골라준 붓으로 그려서 이번에 상 받았어요.’ 때때로 이런 연락을 받으면, 홍 대표는 그게 그렇게 기쁘다. 이러한 이치는 학생들에게 “남이 해놓은 것만 따라 하지 말고, 네 그림을 그려라”라는 인생 조언으로도 종종 전달된다.

어디 그뿐인가. 그는 자신이 검수하지 않은 붓은 절대 판매하지 않는다. 구하산방의 붓은 그의 주문에 의해 그의 공장에서 직접 만들어지는데도, ‘내 손이 오케이 떨어져야’ 판다. 만만치 않은 통과 절차, 그러니 누구인들 믿고 사지 않겠는가.

이곳의 붓 수천 종은 처음부터 수천 종이 아니었다. 누구는 부드럽게, 누구는 탄력 있게, 누구는 뽀동뽀동(?)하게, 누구는 길게, 누구는 짧게, 누구는 두껍게, 누구는 얇게…. 홍 대표는 “사람들이 찾고 원하는 모습과 형태의 붓들을 만들어 놓다 보니 오늘날 수천 가지가 자연스레 갖춰졌다”고 덤덤히 말한다. 

그의 안내를 따라 잡아본 붓 한 자루. 물기를 머금은 붓끝이 부드럽게 화선지 위를 지나고, 처음 느껴보는 느낌이 손을 타고 스민다. 그 자연스러움에 마음이 따라 흐른다. 두 마음이 들지 않는다. 일심(一心)으로 향하는 길, 그 자체다.
 

[2023년 05월 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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