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주 교도회장
김혜주 교도회장

[원불교신문=이현천 기자] 부모님을 따라 교당에 다니던 한 소녀는 ‘교무님처럼 되고 싶다’는 꿈을 꿨다. “교당에서 본 교무님들이 천사 같고, 예뻐 보였어요.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고 자연스럽게 생각했죠.” 

그렇게 전무출신의 꿈을 키웠지만 건강이 따라주지 않아 집으로 돌아와야 했고, 김혜주 교도(주천교당)은 재가교도로 살다가 남편을 만나 주천면으로 오게 됐다. 

당시 주천면에는 교당이 없었다. 조금 멀리 진안군에 교당이 하나 있었지만 시조부모, 시부모를 모두 모시는 새댁은 차마 교당에 갈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원불교를 다시 만난 건 남편의 일 때문에 김포로 이사를 가서다. 때마침 김포교당이 창립했다는 말을 들은 것이다. “언니에게 ‘김포에 원불교 생겼다’는 말을 듣고는 집에 있는 것이라면 정말 무엇이든 다 교당에 갖다주려고 했어요. 처음엔 교당 형편이 어렵잖아요.” 그렇게 그는 다시 만난 교당에 온 정성을 다했다. 지금도 그때 교무님과의 인연이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행복한 교당 생활은 잠시였다. 시아버지에게 중풍, 시어머니에게 치매가 찾아온 것이다. 한 사람만으로도 온 가족이 힘든 중병을 둘이나 앓는 집이 되자 그는 자연스레 시부모님 간병을 맡게 됐다. 당시의 심정을 그는 이렇게 회고한다. “교당에 와서 일원상을 보면 그렇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교무님께 <성가> 146장 ‘건강을 주소서’를 참 많이 불러달라고 했죠.”

살면서 어디 굴곡이 이뿐이었겠는가. 개인적 어려움은 물론, 교당과 지역사회에서 활발하고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듣는 여러 경계의 말들까지…. 그럴 때마다 그는 간사근무 시절 스승님께 지도 받은 ‘지어놓은 대로 받는 것이니 잘 참아야 한다’는 한 줄 짜리 말씀을 떠올렸다.

덕분에 ‘이만하면 다행이다’는 심법을 키울 수 있었다고 말하는 그. “저도 남편도 아침에 무사히 눈떠서 감사하고, 여러 가지 경계들이 오지만 다시 생각하면 또 ‘이만하길 다행이다, 감사하다’ 싶어요. 그렇게 감사를 찾아요.”

김 교도를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김성길 교무(주천교당)은 “회장님은 교당에도 잘하지만, 지역에서도 봉사와 새마을 부녀회 등 단체 활동에서 원불교 교법을 실천하는 봉공인”이라고 설명했다. “이생에 잘 지어 내생에 교무님 되려면 열심히 해야죠. 열심히 베풀고, 또 (봉사)가서 잘해서 이생에 못 한 교무님이 되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김 교도의 눈이 반짝인다.

[2023년 05월 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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