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오성 교무
장오성 교무

[원불교신문=장오성 교무] 신은 성별이 있을까. 여성일까 남성일까. 어디에서는 신을 어머니로 묘사하고 다른 곳에서는 아버지로 부른다. 신을 남성이나 여성으로 부르는 것은 인간의 관점일 뿐, 실제로 신은 성별이 없다. 여자도 아니요 남자도 아니며, 어머니도 아버지도 아니다. 굳이 연결 짓는다면 아버지보다는 어머니 쪽에 가깝다. 

신을 의인화한 것은 신이 만물을 낳아 기르는 점에 착안하여 인간에게서 이와 유사한 존재를 찾아 신과 연결시킨 것으로 보인다. 신은 만물을 생산해서 잘 기르며 영원히 살게 해주는 자비로운 존재다. 이런 신의 특징을 가진 이는 누구일까. 

잘 알듯이 생명을 낳아 기르는,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대체로 자비로운 이는 어머니다. 허나 여성 단독으로 생명을 생산할 수는 없는 일이고, 그렇다고 남성을 낳는 자라 할 순 없으니, 신을 여성이라 해도 맞지 않고 남성이라 칭하는 건 더더욱 거리가 멀다. 

허공, 신, 진리에는 신기하게도 음과 양이 함께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텅 빈 허공에 음과 양의 기운이 함께 있어 만물이 저절로 만들어진다. 신은 음과 양, 암수를 한 몸에 가지고 있어 묘하게 만물이 생성된다. 그런 까닭에 신을 여성이나 남성으로 표현하기 보다는 암수한몸, 자웅동체로 묘사하면 이해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텅 빈 허공이 
일체를 낳는 신이며 조물주다.

일체를 만드는 것은 천지 가득한 음양의 기운이다. 하나인 조물주가 만물을 만드니, 그 조물주는 음양, 자웅, 암수   한몸인 셈이다. 텅 빈 허공이 일체를 낳는 신이며 조물주다. 태어남을 주관하는 것은 신의 영역이지 각 개체가 하는 것이 아니다. 각자는 태어남을 원하거나 생산의 통로가 될 수는 있어도 태어남을 주관하는 능력은 오직 신에 있다. 

신은 하늘에 계신다 할 일도 아니다. 땅에는 신이 없는가. 어디까지가 신이 계신다는 하늘인가. 땅속 깊은 곳에 있는 공간은 하늘인가 땅인가. 신은 없는 곳 없이 무소부재하며, 일체는 텅 빈 허공이요, 신이 계신다는 하늘이다. 

성별도 없고 하늘땅으로 나눠지지도 않는, 무소부재하게 있는 신에 음양의 기운이 가득하여 일체가 탄생된다. 일체 우주만물은 만능인 신에 의해 만들어지고 성장되며 노병사하고 생주이멸하며 성주괴공하고 춘하추동 한다. 표현은 달라도 원리가 하나다. 

음양의 기운을 가진 하나의 신이 만물을 낳아 기르고 영원한 변화를 거듭하며 성장시킨다. 신에게는 끝없이 낳고 운영하는 만능이 있어 만물은 영원히 지속된다. 일체는 오직 영원한 생(生)만 있는 영생이다. 죽음은 없다는 뜻이다. 죽음이라 부르는 순간 역시 생의 한 과정일 뿐, 소멸이나 종말이나 직선의 끝이 아니다. 겨울의 끝은 봄이듯, 죽음 또한 영원한 생의 한 싸이클이다. 

죽음이라 부르는 상태는 약간 긴 잠이다. 8시간 숙면 후 깨어남이 어제와 오늘이듯, 49일간 숙면 후 깨어남이 전생과 후생이다. 어제의 나나 오늘의 내가 같고, 49일 전이나 지금의 나는 같다. 옷 좀 갈아입었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나는, 일체 만물은 그렇게 삶이 영속된다. 

일체만물은 영원한 성장, 영원한 생만 있다. 영원한 생만 있으니, 영생토록 일체를 살리기만 하고 있으니 이를 은(恩)이라 한 것이다. 영원히 살게해 주시니 얼마나 은혜로운가. 우리에게 일어나는 어떤 일도 영생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오직 은혜의 요소들이다.
신은 여자도 남자도 아닌 음양을 함께 가진 기운이며, 그로 인해 만물은 영원히 산다는 것! 

/변산원광선원

[2023년 05월 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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