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각성존소태산대종사비명병서’로 후천개벽 성자 천명
“열반 전 직접 부촉한 말씀 깊게 새겨 공부길 잡아가야”

올해 6월 1일은 소태산 대종사 열반 80년을 맞는 날이다. 원불교 교단적으로는 제3대를 정리하고, 제4대를 준비하는 중요한 분기점이기도 하다. 80년 전 그날 소태산 대종사가 남긴 후진들을 향한 마음은 지금에 얼마나 닿아 있을까.

소태산의 생전 모습
소태산 대종사의 생전 모습에 대해서는 여러 기록이 있지만, 〈대종경선외록〉 실시위덕장에 비교적 자세히 남아있다. 기록에 따르면 소태산 대종사의 신장은 175㎝ 정도에 체중은 90㎏ 정도로 조선말, 일제강점기 성인 남성 평균 키 162.6㎝보다 10㎝ 이상, 체중 역시 40㎏ 이상 더 나간 거구였다. 목소리에는 쇳소리와 쉰 소리가 섞여 있었는데, 평상시와 설법시의 발성이 달랐다고 한다. 성량도 우렁차서 박제권 원로교무는 “온 법당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법설하는 대종사님을 보면 모든 사심잡념이 녹아났다”고 기억한다.(〈원불교신문〉, 1151호, 2002.06.07.)

머리 위와 얼굴, 몸에서는 항상 원광(圓光)과 안광이 비쳤고, 그 색은 자줏빛 금색을 띠었다. 이에 대한 일화를 전성완 선진은 “대종사님께서 밤에 화장실을 갈 때 팔산님과 동행했는데, 그때 어두컴컴한 세상이 환히 밝아져 놀랐다. 그때 소태산 대종사님께서 ‘내가 지금 발광하고 있는 중이오’라고 하셔서 팔산님이 대종사님 도통하신 것을 믿게 됐다”고 전한 바 있다.(〈한울안신문〉, 2018.05.03.)

소태산 대종사는 덕화와 위엄이 겸전해 한때라도 모시고 있으면 그 훈기에 추운줄을 몰랐고, 조그만 사심이라도 품으면 떨려서 그 앞에 서지 못할 천지의 정기를 지녔다고 한다. 송영봉 원로교무는 “엄부와 자부를 겸하신 어른으로 이 세상 모든 일을 훤히 다 아시고 내 속마음까지도 알고 계신 것처럼 느껴졌다”고 회고했다.(〈원불교신문〉, 1152호, 2002.06.14.)

하지만 엄중한 일제강점기를 지내고 교단을 위해 소태산 대종사는 미리 자신의 열반을 준비하며 제자들에게 교법과 교리를 새겨주고, 열반에 대한 암시를 건넸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정윤재 원로교무가 전한 바 있다. “‘너희들 나 없어도 살겠느냐?’ 하셔서 ‘살다가 뵙고 싶으면 가서 뵙지요’ 하니, ‘멀리 수양가도 뵈어?’라고 하셨다. 어디 산중이라도 가시는 줄 알았다”는 것이다.(〈원불교신문〉, 1152호, 2002.06.14.)
 

소태산 열반
소태산 대종사의 열반상은 원기28년(1943) 5월 16일 공식석상 최후법문을 설한 뒤 발생한 병증으로부터 시작된다. 5월 27일 천식이 심해진 소태산 대종사는 오후 4시경 이리병원의사 와카스키 씨로부터 응급 치료를 받았고, 그의 권유로 이리병원에 입원했다. 

6월 1일 오후 1시 반이 넘은 시간, 소태산 대종사는 부산 초량지부에서 올라와 사흘 전부터 대기하던 조전권을 면회하던 중 안락의자에 앉은 채로 쓰러졌다. 송도성, 조갑종 등이 응급조치를 했지만, 기식(氣息)이 없었다. 뒤늦게 병실에 온 의사에게 간호원은 “어렵다”고 말했다.

오후 2시 30분경, 소태산 대종사는 열반했다. 그리고 오후 3시경 소태산 대종사의 열반 소식이 총부에 전해졌다. 제자들은 조실 앞마당에 엎드려 대성통곡했고, 노인과 젊은이들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길에서 어린아이처럼 뒹굴었다. 옆 사람을 붙잡고 우느라 치마폭이 뜯긴 줄 모르는 여제자도 있었다. 양하운 대사모는 그 자리에서 졸도했다. 조실 앞은 울며 뛰는 사람, 정신없이 바닥을 구르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들은 울고 또 울고, 목이 메어 지치도록 울기만 했다. 황망하기 이를 데 없는 이들을, 만류하거나 위로할 사람은 없었다.(〈원광〉, 2013.05.31.)

정산종사는 이후 ‘원각성존소태산대종사비명병서(圓覺聖尊少太山大宗師碑銘並序)’를 통해 ‘(소태산 대종사께서는)일원대도(一圓大道)의 바른 법을 시방삼세에 한없이 열어 놓으셨으니, 백억화신(百億化身)의 여래(如來)시요 집군성이대성(集群聖而大成, 뭇 성인들이 모여 크게 이루었다는 뜻)이시라’고 표현하여 소태산 대종사를 후천개벽의 주세성자로 천명했다. 

부촉의 핵심 이어받아야
전산종법사는 최근 영산선학대학교 예비교무 훈증과 수위단회의에서 〈대종경〉 부촉품을 언급했다. “〈정전〉과 〈대종경〉의 내용이 모두 소태산 대종사님의 부촉 말씀이지만, 그중 〈대종경〉 부촉품에 수록된 법문은 열반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꼭 전해야 할 내용을 담고 있으므로 중요도가 높다”고 강조한 것이다.

이어 전산종법사는 ‘부촉품 말씀 중에도 전체를 총섭할 수 있는 세 가지’로 부촉품 4장(나의 법은 신성있고 공심있는 누구나 받아가도록 전했다), 6장(중근의 고개를 넘는 데 각별한 힘을 써야 한다), 9장(법을 해석적으로 설해… 해석에만 치우치지 말고 삼학을 병진하는 데 노력하도록 하라)를 꼽아 설명했다.

소태산 대종사는 80년 전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로부터 비롯된 정신적 유산은 면면히 남아 흐르고 있다. 홀로 열반을 계획했던 소태산 대종사의 마음에는 후진을 향한 걱정과 당부가 가득했을 것이다. 그 부촉의 마음을 체받아 ‘실행’해야 할 우리다.

[2023년 05월 3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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