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해 기자
장지해 기자

[원불교신문=장지해 기자] 30년 전쯤이려나, 교당에 열심히 다니던 한 어린이회원은 일상수행의 요법 3조(심지는 원래 그름이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있어지나니, 그 그름을 없게 하는 것으로써 자성의 계를 세우자)를 외우다가 작은 깨달음을 얻는다.

‘맞아, 촛불의 심지에는 원래 그름(그을음)이 없지. 우리 원래 마음은 불이 붙기 전 (초의) 심지처럼 깨끗한데, 경계(불)이 붙으면 그름(그을음)이 생기는 것처럼 된다는 말인가 보다.’

마음 땅이라는 의미의 심지(心地)를 촛불의 심지로, ‘그름=그르다’를 ‘그름=그을음’으로 이해한 어린이, 사실은 내 이야기다. 그리고 그때 이런 생각을 했다. ‘불이 붙기 전 깨끗한 (초의) 심지처럼 마음을 쓰면 되나 보다’고. ‘짚신 세 벌’ 같은 경우랄까.

함께 근무하는 선배 교무님에게 이 이야기를 하니 껄껄 웃는다. 그러더니 “그것도 맞는 비유이긴 하네!”라고 한다. 이 이야기를 꺼내게 된 이유가 있었다. 바로 ‘원불교 언어문화’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다.

언어를 다루는 환경에서 근무한 지 11년째. 그러다 보니 저절로, 그리고 점점 ‘원불교 언어’에 대한 생각과 고민이 깊어진다. 처음 이 일을 하게 됐을 때 지도 받은 내용 중 인상 깊었던  것이 있다. 바로 “암호 쓰지 말라”던 선배 교무님의 말이다. “우리가 할 일은 우리의 정신이 담긴 우리의 언어를 더 많은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 전달하는 것”이라는 가르침도 덧붙었다.

‘원불교 언어문화’를 생각해본다. 우리에게는 익숙한 어떤 표현이, 대중적 또는 사회 일반적으로 어떻게 이해되고 있을까. 대표적으로 ‘대종사’라는 말이 그렇다. 원불교 구성원들끼리는 ‘대종사님’이라고 하면 당연히 한 분을 떠올리고, 당연히 그렇게 이해한다. 하지만 일반 사회에서도 그럴까. 원불교 사람에게는 ‘소태산 대종사’라는 말을 확산하고 일반화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 지난주 〈원불교신문〉 ‘풍향계’에 실린 내용을 인용한다. ‘교조관: 대종사는 많아도 소태산은 유일하다. 대종사는 보통명사, 소태산은 고유명사다.’

또 하나는 ‘대각개교절’이다. 대각, 개교, 절, 모두 한자어다. 원불교 고유성을 가장 잘 표현하지만, 요즘 세대에게는 도통 어렵다. 불교에서는 석가탄신일이라는 명칭을 2018년부터 ‘부처님오신날’로 공식 변경했다. 우리도 물론 대각개교절을 ‘원불교열린날’과 함께 쓴다. 하지만 언어문화에 깊은 고민이 있어서라기보다, ‘그냥’ 병행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우리 문화에 ‘착붙’이 잘 안되고, 아직도 누군가는 낯설어한다.

어떤 집단의 언어문화는 그 집단의 모습을 보여주고, 이해케 만든다. 원불교가 보편종교로서 세상과 하나 되고 세계와 하나 되기 위해서는 ‘언어문화’에서부터 유념이 필요하다. 

언어문화를 통해 ‘우리 문화’를 ‘세상과 세계의 문화’로 키워가자.

[2023년 05월 3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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