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에 대한 갈증 높음 실감… 종교의 첫번째 사명
“종교간 대화는 서로의 다양성 존경하며 배우는 기회가 돼”

[원불교신문=장지해 기자] 그는 하나님을 ‘종교적 맹인’이라고 표현했다.
이유인즉 이렇다. “하나님은 ‘종교적 맹인’입니다. 보지 못해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는 가톨릭, 원불교, 불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구별하지 않으니까요. 그분은 다만 ‘인간의 마음’을 봅니다. 그래서 어떤 마음을 갖고 사는지,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인지가 중요해요.”

이탈리아 출신으로, 1988년 한국 땅에 첫발을 들였다. 그때부터 그렇게 쭉, 한국에서 산 세월이 어느덧 30년을 훌쩍 넘는다. 그냥 처음부터 당연히, ‘일생을 외국에서 산다’를 받아들이고 시작한 결정이었다. 그가 속한 콘솔라따선교수도회의 원칙이 그렇단다. ‘평생 외국에서 선교 활동하며 공동체 생활을 한다.’

강 디에고 신부(본명 디에고 카촐라토, Cazzolato Diego)는 외국인 신부지만, 우리나라에서 그 누구보다 종교간 대화에 관심이 많고, 적극적인 인물로 유명하다. 지난해 4월 28일에는 중앙교구 이리교당에서, 올해 4월 28일에는 대전충남교구에서 원불교열린날을 함께 축하했다. 천주교 주교회의 종교간 대화 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하는 그에게 이러한 일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일상’인 듯했다.

신부님은 수도회에서 한국 땅을 밟은 초대 선교사로서, 쭉 한국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 수도회에서) 선교사가 되는 사람은 원래부터 알아요. 별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외국에서 일생을 살 거라는 것을요. 그러다 보니 심리적으로 준비가 돼 있었고, 무엇보다 영적 목적이 있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도 살 수 있어요. 그 나라가 나의 나라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거죠. 그 나라의 역사, 사람, 상황이 ‘내 것’이 돼야 기쁘게 살고 여유있게 활동할 수 있잖아요.”

중간에 로마 본부로 복귀했던 3년 반을 빼도 30년이 넘는 시간. 그사이 강 신부는 미역국도, 된장국도, 김치도 잘 먹을 수 있게 됐다. 한국말도 유창히 한다. 하지만 정작 그는 자신의 한국인화(?)를 ‘70% 정도’라 표현하며, “나머지 30%는 일부러 비워두는 것”이라고 했다. 이탈리아 사람이라는 것을 간직하고 싶어서이기도 하고, 한국을 잘 보려면 약간의 거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원기107년 이리교당 대각개교절 기념식에서(사진 맨 왼쪽).
원기107년 이리교당 대각개교절 기념식에서(사진 맨 왼쪽).

한국에서의 첫 활동은 무엇이었나요.
“선교사로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살자’는 생각을 기본으로 갖고 있었는데, 막상 한국에 와보니 가난한 사람을 만나기 어렵더군요. 조금씩 살피면서 도시 달동네의 존재와, 그곳에 사는 사람-그들을 쫓아내려는 사람 사이에 많은 갈등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우리가 한번 달동네에 들어가 살아보자’고 했어요.인천 망석동 달동네 공부방에 합류한 계기입니다.” 거창한 무엇인가를 하기보다, ‘함께 살기’ 위한 선택을 한 이들. 이미 달동네에서 공부방을 하고 있던 가톨릭 평신도 부부 활동에 봉사자로 힘을 보태며 세상을 만났다.

달동네에서 살아보니 어땠나요.
“아주 재미있는 그런 체험이었어요. 가장 먼저,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 모습이 잘 보였어요. 예를 들어 그 동네에 사는 아주머니들이 집 밖에 모여 종일 굴을 까면서 서로 이야기 나누는 풍경 같은 거요. 또 거기 살면서 무당이 굿 하는 것도 처음 봤어요. 한국에 와서 처음 경험한 종교가 여럿인데, 무교(巫敎)는 나에게 가장 큰 인상을 남겼어요. 신비스러운 무언가가 있고, 메신저로서 역할 한다는 점, 그리고 한국 사람들의 마음에 가장 깊은 기초임을 알게 됐죠.”

이후 머물던 부천 ‘위로의 샘터’는 그야말로 종교간 대화 공간이었던데요.
“한국에 처음 올 때부터 종교간 대화에 관심이 있었지만 망석동 삶을 체험하는 동안 잠깐 잊었어요. 그러다 인천에서 부천으로 옮겨 생활하게 됐을 때 종교간 대화에 대한 갈망이 큰 스페인 신부님과 함께 지내게 되면서 관심이 다시 살아났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종교간 대화 활동을 하며 원불교 익산성지에도 다녀갔었다. 당시의 첫인상을 묻는 말에 물음표 띤 표정으로 답하는 강 신부. 왜인지 다시 물으니, 이렇게 말한다. “부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소태산 대종사의 이름으로…라면서 ‘모두 똑같은 가르침이다’고 말하는데,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그때는 ‘어째서 예수님의 이름을 다른 종교인이 말하는가. 어째서 예수님을 (유일이 아니라) 성인 중의 하나라 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자신의 신앙과 믿음을 가장 우선에 두는 생각은 여전히 변함 없으면서도, 그때와 지금 여러 종교를 대하는 마음은 분명 변화했다.
 

종교간 대화를 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요.
“종교간 대화는 개종시키기 위해 하는 게 아니에요. 서로를 존경하며 배우는 기회죠. 세상에 다양한 종교가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만나고 교류해야 해요. 가톨릭도 제2 바티칸 공의회를 기점으로 생각을 바꿨잖아요. 이전까지 ‘우리가 유일한 진짜 종교이고,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이 교회에 들어오게 해야 한다’던 것을, ‘우리도 이 세상의 많은 종교 중 하나’라고 인정하게 된 거죠.”

‘종교’에 대한 관심은 없어도 ‘영성’에 대한 관심은 많다고들 합니다.
“영성에 대한 요청, 아주 많아요. 2년 전부터 이곳에서는 관상기도(침묵 가운데 마음으로 묵상하며 하나님을 만나는 기도) 교육을 하는데, 시작은 5명 정도의 요청이었어요. 여기에 몇 명만 더 모으려고 교구 주보에 홍보했는데, 첫 모임에 20명이 왔더라고요. 2기 모집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이러한 현상을 그는 ‘그만큼 영성에 대한 갈증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는 반증’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이를 채워줄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는 게 현실이고, 그래서 큰일이라고도 했다. 이 일이야말로 종교가 해야 할 ‘첫 번째’ 사명인데 말이다.

미래 종교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종교가 사회적으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말도 맞고, 물론 필요해요. 하지만 진짜 종교의 역할은 ‘참된 인간을 만드는’ 데 있어요. 자기의 마음을 알고, 받아들이고, 그렇게 생활할 때 사회에도 자발적으로 역할 하는 사람이 돼요. 영성적인 종교여야 미래 종교로서 쓸모 있는 종교가 될 거예요.”
 

종교인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마음 자세를 무엇으로 보나요.
“사람마다 각자 ‘자기의 역사’가 있어요. 이때의 ‘역사’를 가톨릭 식으로는 ‘예수님과의 인격적 만남’이라 표현하는데, 그 만남이 있으면 삶의 기초를 가진 거라서,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걱정하지 않게 돼요. 어떤 나라에 살고 어떤 일을 하든, 다 받아들이게 되는 거죠. 어디서든 자유롭고 즐겁게, 고통받더라도 문제없이 살 수 있는 비결이에요.”

행복하게 살고 싶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건 아주 쉽게 말할 수 있습니다. ‘자유롭게 일하고 사랑한다.’ 자유롭게 선택하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섬기며 사랑하면 돼요. 나는 ‘하나님 없이는 구원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구원이 가톨릭교회 안에만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나님은 우리보다 훨씬 더 크고 넓고 보편적이라서, ‘종교’라는 울타리를 쉽게 넘어가는 분이니까요. 결국 ‘마음’이 중요합니다.”

[2023년 05월 3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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