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태산 대종사 열반이 80년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이어져온 소태산의 궁금증은 구도의 과정으로 쌓였고, 진리에 대한 염원과 상상은 결국 26세 청년 소태산의 깨침으로 이어져 새 시대 새 성자의 탄생을 맞게 했다.

하지만 그 깨침은 다시 새로운 시작이었다. 소태산은 9인 제자에게 단지 깨침을 전하는 것에 머물지 않았다. 오히려 구도과정 못지않은 열정으로 시국을 조망하며 세상을 구원할 새판을 짜는 것에 혼신을 다했다. 이 모든 것은 익산에 중앙총부를 건설한 후 소태산의 거침없는 행로에서 잘 나타난다. 당시 증기기관차의 보급으로 철도교통의 시대가 열렸다고 하나 익산에서 대전을 거쳐 서울로 상경하는 교통편은 하루를 소비해야 할 만큼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 불편을 마다하지 않고 수시로 오르내린 소태산의 행적이 초기교단 역사에 기록돼 있다.

이는 곧 문물의 변화를 예의 주시하며 체험을 주저하지 않은 증거로 남았다. 세상의 문명을 보여주는 국제박람회 견학을 비롯 비행기 탑승, 전기의 보급, 보험증서의 효능과 축음기 사용 등에서 소태산의 당시 문명에 대한 강한 호기심을 읽을 수 있다. 소태산의 이러한 시대인식과 상상이 있었기에 오늘의 원불교는 물질개벽 시대에 정신개벽을 이끌어 가는 혁신종교로 성장할 수 있었다.   

소태산의 시대정신은 교전 곳곳에 배어있다. 최초법어에서 밝힌 ‘시대를 따라 학업에 종사하여 모든 학문을 준비하라’는 말씀은 부지런히 배우고 익히지 않으면 시대에 뒤처진 종교인으로 전락할 수 있음을 가르친다. 또 개교의 동기에서는 ‘현하 과학의 문명이 발달됨에 따라’라고 제시해 종교의 시대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다시 <대종경> 교의품 31장에서 ‘현대와 같이 물질문명에만 치우치고 정신문명을 등한시하면 마치 철모르는 아이에게 칼을 들려준 것과 같아서 어느 날 어느 때에 무슨 화를 당할지 모른다’며 물질과 정신의 관계에 대해 우려했다. 소태산의 이런 시대통찰은 문명에 대한 경험과 상상의 바탕이라 할 수 있다.

어느새 교단에는 108년 역사가 쌓였다. 그동안 세상문명은 극도로 밝아져 지구촌 시대를 만들었고, 문물의 변화 역시 시간과 공간을 더욱 촘촘히 엮어 가상과 현실이 통섭되는 상상 밖의 세상이 되었으며, 세상인심은 물욕을 중심으로 한 극도의 이기주의로 세태를 변모시켰다. 이러한 변화는 지금 세상을 통제되지 않고 통제하지도 못하는 원심력의 세상으로 팽창시켜 인류 재앙의 위기를 낳고 있다.

그러기에 지금 우리가, 소태산의 후예를 자부한다면 현하 시대를 조망하며 배우고 상상하는 일에 게으를 틈이 없다.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건 미래를 상상하는 통찰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상상이 현실이 되면 시대화를 이룬다. 좋은 상상을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식견을 넓혀야겠다. 소태산의 전망이 구심력이다.

[2023년 05월 3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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