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오성 교무
장오성 교무

[원불교신문=장오성 교무] 이곳 선원 관리에는 참 많은 장비가 필요하다. 전동톱, 전동예초기, 전동가위, 전동전지톱, 전동송풍기 등, 요즘 나오는 장비들은 어찌나 성능이 좋은지 그야말로 혁명적이다. 이들 아니었으면 그 많은 일들을 어찌 다 해냈을까. 그 앞에 절을 하고 싶을 만큼 고맙다. 귀한 보물이라 실내에 소중히 모시는 몸값 높은 일꾼들이다. 

장비 종류가 워낙 다양하고 충전기와 배터리가 비슷비슷하니 이름표를 붙이지 않으면 짝을 찾기도 어렵다. 이들은 에너지원인 배터리 충전이 안되면 무용지물이 된다. 작업하기 전 미리미리 충전을 해놓아야 장비의 본래 효능이 발휘된다.

우리의 심신 역시 온종일 작동되는 정교한 장비들이다. 사람이 사는 것 자체가 매 순간 무한대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그 무한동력, 에너지는 어디서 오는 것이며, 에너지원인 배터리 충전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그 무한동력은 바로 허공, 자성, 일원이다. 텅 빈 허공이 무한한 에너지 덩어리다. 허공은 만능이기에 우주 안 일체 만물의 작동은 무한동력인 허공이 한다. 이 무한동력 허공에 플러그를 꽂는 것이 배터리 충전이다. 

플러그를 꽂는, 충전하는 시간을 정신수양이라 한다. 자성의 정, 일심 양성, 요란함 없는 상태에 머무는 것이 충전이며 정신수양이다. 비움이란 ‘육근을 나로 삼았던 그 나’를 툭 없애는 것이다. 원래 없는 나를 놓고 자성으로, 일원으로, 허공으로 돌아감이 곧 비움이다. 무엇을 어디에 비우는 것이 아니다. 자성으로 돌아가는 일 자체가 수양이며, 비움이며, 함양이며, 요란함 없는 것이며, 자성의 정을 세우는 것이다. 
 

깨어있는 상태로
육근 문을 닫아
자성을 반조함이
수양이며, 선이며, 일심이다.

괴롭거나 마음이 요란하다면 일원에 머물지 않고 내가 따로 분리되었다는 반증이다. 내가 따로 있고 일체는 나와 분리되어 있다고 믿는 것이 깨닫지 못한 중생의 어리석은 소견이다. 절대로 분리될 수 없는데도, 생각으로 나와 상대를 분리한다. 이런 상대심으로 탐진치라는 강한 에너지가 분출될수록 방전이 빨라져 그만큼 사는 게 힘들고 지병들이 따라붙는다. 

충전하는 최고의 방법은 선이다. 선이란 일심, 한마음으로 돌아감이다. 그 한마음이 바로 자성이다. 깨어있는 상태로 육근 문을 닫아 자성을 반조함이 수양이며, 선이며, 일심이다. 오직 자성에 맥을 대 분별성과 주착심을 다 끊는 것이다. 앉아서 단전호흡 한다고 좌선을 하는 것이 아니다. 견성을 못하면 돌아가야 할 자성을 모르니 참된 선도, 수양도 할 수 없다.

진리는 밤과 낮을 교차시켜 작용과 휴식을 반복하게 하여 일체 만물을 키워내는 주밀한 장치를 자비롭게도 다 갖춰 놓았다. 밤은 진리가 준 충전시간이다. 현대인들은 그 시간마저 단축해 사는 데다 극도의 스트레스로 쉽게 에너지가 방전돼 소위 번아웃이 일어난다. 육근을 존절히 사용하고 늘 자성에 충전하고 살면 평안하여 번아웃 될 일이 없다. 

젊을 때 기력이 왕성하다고 육근을 막 사용하다 보면 어느 순간 타고난 에너지를 다 소진하기 쉽다. 지혜로운 이는 젊을 때부터 기력을 보하고 충전할 줄 안다. 충전 없이 사용만 하면 정신도 육신도 고장과 병이 잦고 수명이 단축되며 삶이 괴롭다. 

우주 허공법계, 무한동력에 플러그를 꽂아 살면 육근 배터리가 소진 없이 운영되니 헌거롭고 자유롭다. 깨달음 이후 오래오래 지성으로 자성반조 하는 것이 참 수양인데, 자성을 발견해 그곳에 충전은 하고들 사시는가.

/변산원광선원

[2023년 05월 3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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