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정원카페 ‘베케’에서 배우는 자연 대하는 태도
자연 그대로인 정원이 대세, 영감·휴식 장소로 각광
“도심 채우는 ‘고래’들 사이에 필요한 건 ‘멸치 떼’”

[원불교신문=이현천 기자] 정원을 지나 동굴로 들어가는 듯한 코너를 도니 큰 문이 기다린다. 힘껏 열고 들어가면 어둑한 실내에 한 번, 1m 정도 아래로 파인 공간 너머로 펼쳐진 통창 밖 풍경에 두 번 눈길이 쏠린다. 자리를 찾아 계단을 몇 개 내려가니 더 깊은 곳으로 향하는 느낌이 든다. 창밖의 풍경이 점점 사람의 눈높이와 맞춰지고, 땅과 나의 시선이 나란히 마주친다.

사람은 작아지고, 덕분에 더 큰 자연을 마주하게 하는 곳 베케(VEKE). 이곳은 단순히 SNS 핫플레이스라 칭할 수 없다. 현대적 건물 뒤에 숨겨진 비경(祕境)을 만날 수 있는 곳이자 인간과 자연, 생태와 흐름을 성찰하는 ‘마음의 정원’이기 때문이다.
 

눈높이를 낮춰 만나는 풍경
분명 소박한데 화사하고, 분명 낮은데 거대하다. 크고 작고 높고 낮은 식물들이 어우러지며 그야말로 ‘자연스러움’을 뽐내는 ‘베케’. 독일어인가 싶은 이 단어는 ‘밭을 일구다 나온 돌을 쌓아놓은 무더기’라는 뜻을 가진 제주도 말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그냥 ‘정원’을 덤으로 삼는 ‘카페’인 줄로 알았다. 하지만 이곳에서 만난 풍경과 철학은 바로 시선을 변화케 했다. 건물 안 통창 너머의 풍경은 베케(돌무더기)와 이끼 정원을 눈 앞에 나란히 펼쳐낸다. 땅과 눈을 맞춰본 게 언제일까. 아니, 살면서 그래본 적은 있었던가. 

베케의 정원은 사람이 ‘위’에서 내려보는 구조가 아니다. 같은 높이에서 마주하거나, ‘아래’에서 올려보게 만들어졌다.

어둑한 실내를 밝히는 햇빛 가득한 창가에 앉아 웅장한 자연을 바라본다. 그 아름다움에 말을 잃는다. 눈으로 쏟아지듯 다가오는 자연은 화려하게 점철된 아이맥스(IMAX) 극장의 블록버스터 영화와는 또 다른 압도감을 선사한다.
 

제자리인 듯 자연스레
통창과 돌무더기, 돌무더기를 덮은 이끼 정원이 베케의 모든 볼거리는 아니다. 이끼 정원 너머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길에 나선 이라야 베케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실내 홀을 가로질러 뒷문을 열고 나가면 그 너머에 흐드러지듯 피어난 이름 모를 꽃과 초목들이 환히 반긴다. 

본래 이곳은 카페 주인이자 김봉찬 더가든 대표이사 조부모의 땅이었다. 자신의 고향, 그리고 고향땅에 ‘베케’를 만든 것이다.

제주임을 알려주는 작은 현무암으로 턱을 쌓은 소담한 화단은 그 자체로 자연스럽다. 오히려 빽빽이 조성되지 않고 계절을 따라 시들어 있기도 한 화단을 보면 인간이 만든 정원이 아니라 초목들의 공간을 인간이 찾아온 듯하다. 그러다 ‘이쯤이면 쉬고 싶지?’ 하고 ‘툭’ 등장하는 휴식 공간에 다시금 내가 선 곳을 자각하게 된다. 

연신 사진을 찍던 기자에게 “예뻐요?”라 물으며 친근하게 다가온 김 대표. 그는 “이제는 자연이 정원으로 들어온 시대”라며 말을 이었다. “예전에는 내 것(아이디어)를 보여주는 디자인이 최고였지만, 이제는 내 디자인에 ‘자연스러움’을 담아내는 것이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 베케는 사람이 구상하고 디자인한 ‘인공 정원’이지만, 특별한 조경은 따로 없다.

공간에 어울리는 ‘자연’을 담아냈기 때문이다. “정원 구성도 제 마음대로 한 게 아니라, ‘그 자리’에 있어야 할 ‘그것’을 심었을 뿐이에요.” 그의 말에서 자연과 생태를 대하는 철학과 지조가 전해진다.
 

바다 아름답게 만드는 건 ‘고래’ 아닌 ‘멸치 떼’
제주토박이로 자라 제주대학교에서 식물생태학을 전공한 김 대표. 90년대에 여미지식물원에서 근무하며 자연주의와 생태주의 정원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곶자왈 탐사 등을 하며 제주의 자연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을 일반에 전하자고 생각했다.

그는 사실 ‘베케의 주인’보다 평강식물원(포천), 비오토피아(제주), 국립 백두대간 수목원(봉화), 아모레 성수(서울), 모노하 한남(서울) 등의 정원을 만든 이로 더 유명하다. 주로 도시에서 정원을 꾸며온 데에는 이유가 있다. “바다를 만드는 건 ‘고래’가 아닌 ‘멸치 떼’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멸치 떼’ 같은 아름다움”이라는 생각에서다.
 

종교는 무엇으로 보일까
그의 표현에 의하면 요즘 세상은 ‘고래가 되기 위해 서로 상처를 입히는 데 주저함이 없는 시대’다. 그래서 ‘멸치 떼 같은 아름다움’을 가진 정원은 더욱 귀하게 주목받는다.
“도시 건축물 조경을 할 때는 버드나무나 작고 부드러운 것을 쓰는 게 좋아요. 반듯하고 높은 현대 건축물 사이사이 공간을 부드럽게 만들어 주거든요.”

어쩌면 이 시대의 종교가 해야 할 역할 역시 ‘그 사이’를 부드럽게 연결하고 채워내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때로는 아래로 내려가 시선을 나란히 맞춰내고, 꾸미지 않은 소소함으로 오히려 풍성하게 아름다움을 채워내는 일 말이다.
 

[2023년 05월 31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