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주현 교도
장주현 교도

[원불교신문=유원경 기자] “석존성탄절에 교당에서 금강경 공부를 하게 됐어요. 그때 교무님이 어찌나 금강경의 정수를 통쾌하게 가르쳐 주시던지 마음에 기쁨이 솟고, 머리가 상쾌해지는 기운을 느꼈죠. 그러면서, ‘아! 이것이 불법의 참뜻이구나’하는 감상을 가졌습니다.” 이는 장주현 교도(불목교당)이 원불교를 만나 느낀 첫 번째 환희심이었다. 

그렇게 그는 교당과의 인연이 깊어져 일요예회와 목요공부방을 빠짐없이 다니게 됐고, 이후 2년여 기간은 자신의 집에 도반들을 초대해 목요공부방을 운영하기도 했다. 

교당 풍물동아리 ‘동남풍’과 인연이 됐을 때, 원래 작곡을 전공했던 그에게는 동남풍이 그저 좋았다. 장구를 배우며 우리 가락이 이토록 신명나다는  걸 알게 됐고, 교당을 오가며 공부의 재미와 함께 동남풍의 활동에 흥겨웠다. 무엇보다도 함께해주는 인연들이 있어 너무도 감사했고 행복했다.

하지만 마냥 행복할 줄만 알았던 그의 건강이 점점 나빠지면서 뜻하지 않게 큰 수술을 받아야 했다. 비장과 췌장 일부를 절제해야 하는 어려운 수술이었다. 육신의 아픔도 컸고, 마음의 걱정도 깊었다.

“하지만 병고 중에도 감사함이 드는 이유가 있었어요. 도반들 때문이었죠. 매일 저를 위해 기도해 준다는 인연들의 문자, 그리고 항상 저의 쾌유를 바라는 교무님까지 힘들었지만 견뎌낼 수 있는 힘이 됐습니다.” 

‘힘내라! 꼭 쾌유한다. 모두가 기도한다’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메시지가 그에게는 희망이었다. 

수술을 원만히 마쳤고 큰 고비를 넘겼다. 며칠 후 불목교당의 ‘깰터음악회’가 열리는 날, 장 교도에게는 고민이 하나 생겼다. 음악회에 동남풍의 공연이 있어 참석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었다. 모두가 “주종이 바뀌면 안된다”며 말렸지만, 그에게는 그동안 준비해온 공연을 마무리 짓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몸이 견딜 수 없이 힘든 시기였지만, 제가 꼭 하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커서 병실에만 있을 수 없었어요.”

그렇게 무대에 올라 준비해왔던 10여 분의 공연을 펼쳤고, 손에 힘이 다할 무렵 힘든 공연이 마무리됐다. 그때 그 순간, 그는 더없이 행복했다.

“처음 교당과 인연이 됐을 때부터 지금까지를 돌아보니 도반들이 함께해 제가 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꼭 이 공연을 함께하고 싶었죠. 앞으로도 도반들과 공부도 풍물도, 계속하고 싶습니다.”

[2023년 05월 3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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