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이 없는 시대다. 아니, 주인을 인정하지 않는 시대다. 이는 주인이란 이름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권력을 남용하며 행색만 일삼으려 했기에, 시대 인심은 더 이상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모두가 주인이 되는 시대로 변모했다. 하지만 이 역시, 자칫 목소리 큰 사람이 주인행세를 하고, 염치없는 사람이 주인인 척 하기에 두려운 시대이기도 하다. 인간 군상은 늘 가짜 주인이 되어, 쟁취와 착취를 위대한 전리품처럼 여겼기에 불행이 끊일 날이 없었다. 

그럼에도 세상을 위하는 참 주인을 갈망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이에 소태산 대종사는 교단품 36장에서 ‘그대들은 다 공도의 주인이 돼라’고 당부하며, ‘설혹 둔하고 무식한 사람이라도 혈심을 가진 참 사람이 참으로 알뜰한 주인’임을 강조했다. 이에 정산종사는 원리편 20장에서 ‘허공이 천하 만물의 주인’이라 했고, 이어 ‘빈 마음이 만물의 주인이니 이 빈 마음을 잘 이용하여야 물질 이용도 잘 하게 되리라’고 했다. 또 경륜편 24장에서는 시방 세계의 주인이 될 것을 당부하며 ‘시방의 주인은 낱 없는 마음, 사 없는 마음으로 주인이 된다’고 밝혔다. 이는 곧, 지위나 권력이나 재물이 있다하여 주인행세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깨우쳐 준 것이다. 

요즘 교단에도 주인 의식의 퇴색을 걱정하는 소리가 높다. 대체로 단체 법인이 그러하듯, 창립자의 생존 시에는 확실한 주인노릇을 인정받고 주인역할에 충실한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역사가 흐르면 주인의 책임보다는 잿밥에 더 관심을 둠으로 인해 조직와해의 길을 걷는가 하면, 혹은 간섭은 주인처럼 하면서 책임은 머슴처럼 행위 함으로써 불신의 골을 키우기도 한다. 

그래서 정산종사는 ‘한 가정의 살림에도 주인은 머슴보다 걱정이 많다’고 했고, 머슴은 ‘교중의 재물이 소모되고 교중의 명예가 손상되어도 자기에게는 상관이 없는 것 같이 건성으로 대하며, 약간의 공이 있으면 상(相)만 남아서 불평이나 하고 남이 알아주는 것이나 헤아린다’(공도편 15)라고 경계했다.

최근, 소태산 대종사를 친견하며 출가해 일생을 ‘오직 교단’만을 생각하며 살아온 전이창 선진의 열반은 많은 후진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온갖 지난한 일 속에서도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소리 없이 후진들의 앞길을 지켜 주고 가르쳐 주었기에 ‘세상의 주인’으로 대중의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일을 할 때는 주인이 되고 일을 한 뒤에는 손님이 되라’는 대산종사의 말씀을 몸으로 마음으로 실행한 진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주인이 귀한 시대다. 지금, 세상의 주인 될 이는 어떤 자세여야 할까. 다시, 대산종사의 말씀을 옮긴다. ‘교전이 내 마음이 되고 내 몸이 되며, 교전과 함께 나이를 먹어야 그 힘을 탈 수 있다. 이렇게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천하의 주인이 될 수 있느니라.’(교훈편 57)

[2023년 06월 0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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