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균
윤덕균

일원 28상(올가미 상): 천하 거물도 일원상 진리의 올가미를 벗어날 수 없다. 
<벽암록> 제33칙은 자복 화상이 고위 관료인 진조(陳操) 상서에게 일원상을 그려서 제시한 법문을 다음과 같이 수록하고 있다. 

‘진조 상서가 자복 화상의 견해를 시험하기 위해 찾아갔다. 자복은 진조가 오는 것을 보고 허공에 일원상을 그렸다. 진조가 말했다. “제자가 이렇게 와서 아직 자리에 앉지도 않았는데, 일원상을 그려서 어찌하자는 것입니까?” 자복은 곧장 방장실 문을 닫아 버렸다.’

자복은 당나라 말 위앙종의 선승으로, 앙산 혜적의 법손으로서 길주 자복사에 주석하며 선풍을 펼쳐 자복 화상이라 불린다. 진조는 <벽암록> 제6칙 평창에 언급된 것처럼, 황벽의 제자 목주 화상(진존숙)을 참문해 선법을 이은 거사다. 진조는 배휴(裵休) 거사와 이고(李) 거사와 함께 당대 유명한 거사다. 그는 스님을 만나면 먼저 공양을 청하고 삼백량을 보시한 후, 반드시 그 스님의 안목을 시험했다. 그렇게 많은 선승의 안목을 간파했지만, 자복 화상의 경지는 간파하지 못했다.

진조가 자복을 찾아왔을 때, 자복은 위앙종의 종지를 계승한 선승답게 불법의 근원과 본질을 텅 빈 허공에 일원상으로 그려서 진조에게 보여준 것이다. 그러자 진조는 자복이 자신의 방문 의도와 선기를 먼저 파악하고, 자신이 받아먹을 수도 없고 문제를 파악하여 다시 제기할 수도 없는 일원상을 허공에다 그려 보인 것에 대해 “제자가 이제 막 화상을 참문하려고 와서 아직 인사도 하지 않고, 자리에 앉지도 않았고, 한마디의 질문도 하지 않았는데, 화상은 미리 허공에다 일원상을 그려 보이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라고 반문한다.
 

 

일원상은 무한의 시간과 공간을 중복시킨 법계를 상징한 동적 도식화라 할 수 있다. 즉 선은 삼세(과거·현재·미래)를 나타내고, 일원의 공간은 시방세계를 표현한다. 다시 말하면 시방 삼세는 자신이 존재하고 있는 ‘지금’이라는 찰나의 시간에 삼세가 함께하고, ‘여기’라는 공간은 시방세계이며, 자기의 ‘본래심’은 만법과 하나 된 법계라는 사실을 구체적인 그림으로 제시하고 있는 법문이다.

자복이 진조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곧장 방장실의 문을 닫은 이유는 무엇일까. 자복은 진조를 위해 일원상을 그려 방편 법문을 제시했고, 자신이 제시한 법문을 진조가 파악했기 때문에 더이상 그곳에 머물 필요가 없었다.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가 자기 일에 몰입하는 선승의 본분을 행동으로 보여 준 것이다. 천하의 진조도 자복 화상이 던진 이 일원상의 올가미를 벗어날 수 없었다. 진조와 같은 거물을 잡으려면 일원상의 올가미를 사용해야 한다는 의미다.
 

일원 29상(인우구망 상): 인우구망(人牛俱忘) 상은 만상을 있는 그대로 대 긍정하는 선의 최고경지다. 
절에 가면 벽면에 일원상이 그려진 것을 본다. ‘웬 일원상이?’ 싶어 자세히 보면 열 개의 소 그림이 있고 중간에 일원상이 있다. 이 열 개의 그림은 마음공부를 소 길들이기에 비유한 심우도(尋牛圖)다. 심우도는 견성에 이르는 과정을 열 단계로 간명하게 묘사한 그림이다. 

심우도에는 송의 보명(普明)이 그린 목우도(牧牛圖)와 송의 곽암(廓庵)이 그린 십우도(十牛圖)가 있다. 전자는 검은 소에서 점점 흰 소로 나아가는, 곧 오염된 성품을 점점 닦아 청정한 성품으로 나아가는 점오의 과정이다. 후자는 검은 소에서 바로 흰 소로 되어버리는, 곧 등을 돌림으로써 보지 못한 청정한 성품을 돌아서서 단박에 보는 돈오의 과정이다. 목우도는 묵조선을, 십우도는 간화선을 반영한다. 곽암의 십우도가 유명하다. 

곽암의 십우도는 ①심우(尋牛, 소를 찾아 나서다) ②견적(見跡, 자취를 보다) ③견우(見牛, 소를 보다) ④득우(得牛, 소를 잡다) ⑤목우(牧牛, 소를 길들이다) ⑥기우귀가(騎牛歸家,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다) ⑦망우존인(忘牛存人, 소는 잊고 사람만 있다) ⑧인우구망(人牛俱忘, 소도 사람도 모두 잊다) ⑨반본환원(返本還源, 근원으로 돌아가다) ⑩입전수수(入鄽垂手, 저자에 들어가 손을 드리우다)다. 
 

보명의 목우도는 ①미목(未牧), ②초조(初調), ③수제(受制), ④회수(廻首), ⑤순복(馴伏), ⑥무애(無碍), ⑦주운(住運), ⑧상망(相忘), ⑨독조(獨照), ⑩쌍민(雙泯)이다. 

중국의 이숭(李嵩), 일본의 슈분(周文) 등의 심우도도 있으며, 한국에는 송광사를 비롯한 사찰에 벽화로 남아 있다. 

목우도와 십우도는 공히 일원상을 포함하고 있다. 목우도에는 10번째 쌍민(雙泯 소·사람 함께 자취를 감추다)에 있고, 십우도에는 8번째 인우구망(人牛俱忘, 소도 사람도 모두 잊다)에 있다. 쌍민이나 인우구망 모두 소도 목동도 다 사라지고 일원상만 남는다. 이 경지는 만상을 있는 그대로 대 긍정하는 선의 최고경지다. 

/한양대학교 명예교수·중곡교당

[2023년 06월 0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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