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이여원 기자] 전미홍(법명 미덕·강남교당) 작가, 그는 첫 책 <아내의 폴더> 출판기념식에서 다음 책은 ‘아름다운 노인 이야기를 쓰겠노라’고 선언해 버렸다. 그의 말대로 ‘스스로 한 말은 허공에 새겨진 것처럼’ 한순간도 떠나지 않았던 것일까. 그가 두 번째 작품집 <누구십니까>를 펴냈다. 여섯 편의 이야기를 모은 연작소설을 통해 그는 ‘한 여인에 얽힌 온전한 하나의 서사’를 그려내고 있다.

<누구십니까>는 결국 ‘나에 대한 질문’이라고 그는 말했다. 스스로에게 ‘나는 누구인가’ 묻는 일과 결부된다는 뜻이다. 3대까지 이어지는 한 가족의 이야기가 나에게로의 질문이 되는 연유, 저자와의 대화가 시작됐다.
 

전미홍 작가.
전미홍 작가.

작품을 구상하면서 혹 유념했던 부분이 있었을까요.
“부모님 이야기로 초점을 맞추면서 전 가족을 조명하고 이야기를 전개해나가겠다는 계획하에 쓴 작품입니다. 어느 소설이든 자전적인 요소가 들어가지 않을 수 없는데, 자전적인 것을 쓰다 보면 보편성과 타당성을 잃기 쉬워집니다. 독자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어려워지죠. 그래서 거리두기를 중요하게 여겼어요. 그러기(거리두기) 위해 애를 썼어요.”

등장인물(장애인 여인)의 내면의 아픔을 바라보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아픔을 바라보는 것, 바라보기는 거리를 두었을 때 가능한 거지요. (거리를 둘) 필요가 없었습니다. 여유가 없었지요. 아픔은 언제나 진행 중이었으니까요. 그러면서도 전 신기하리만큼 늘 당당하고 꿋꿋했는데, 그건 어머니 영향이 컸던 거 같아요. 어머니는 제게 아픔 그 자체이면서도 아름다움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었으니까요. 어머니는 분명 크게 결핍되었지만 그 결핍도 상쇄시킬 만한 힘이 있었던 분이었지 싶어요.”

여섯 편의 연작소설을 쓰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이 있었다면.
“가장 어려우면서도 경계해야 할 부분은 당연히 ‘거리두기’였어요. 의도했던 대로, 각기 화자와 톤을 달리한 여섯 편의 연작소설이 완성됐지만 여전히 아쉬움도 커요. ‘그녀’(두 번째 소설)의 경우는 2019년 겨울호 문예지에 발표되긴 했지만, 쓰기 시작한 건 어머니 초상을 치른 다음 해(2014년)부터였습니다. 감정의 절제를 가장 많이 요하는 작품이었기에 그만큼 긴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앞으로 제가 할 일은 
글쓰기가 ‘일’이 된 것처럼, 
그리움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처럼, 
신앙의 당위성을 지키는 겁니다.

책 〈누구십니까〉
책 〈누구십니까〉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이들에게 ‘청동의 울림’이 어떻게 닿기를 바라는지.
“그리움을 잃지 않았으면 합니다. 우리는 감상에 빠지길 두려워할 때가 많습니다. 감상성이 자기 발전에 방해 요소로 작용한다고 생각하니까요.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는 전제하에 과거로 회귀하려는 욕구를 억누릅니다. 그리움은 타산적이지 않은 가장 순수한 감정입니다. 이 책이 그 그리움을 오롯이 느끼는 시간을 갖게 했으면 합니다.”

작가로서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더 근원적으로 글쓰기는 (본인의)삶에 어떤 의미인가요.
“글쓰기는 내가 할 수 있었던 가장 손쉬운 일이었어요. 사람들은 경제적인 소득을 올리지 못하면 그건 ‘노동이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더욱이 글쓰기를 노동이 아닌 취미 정도로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모든 걸 경제원리로만 풀려고 하기 때문이지요.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봅니다.
여태까지 느리지만 꾸준히 해왔을 뿐이고, 앞으로의 글쓰기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글쓰기는 제게 있어 노동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일’인 겁니다.”

원불교 신앙이 작품활동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제 책을 본 사람들은 작품 속에서 신앙의 흔적을 찾아내기가 어렵지 않을 겁니다. 원불교는 제게 어머니와 다름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종의 ‘그리움’이기도 하지요. 신앙은 글쓰기에 있어서 근원적인 것을 파고들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신앙을 하면 때때로 창작이 무의미한 것이 되어져 버리기도 합니다. 마치 답안지를 들고서 수학 문제를 풀려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웃음).”
 

앞으로 만나게 될 작품도 기대됩니다. 
“저의 기도문에는 꼭 들어가는 문장이 있어요. ‘수많은 사람에게 희망과 용기와 기쁨을 주는 글을 쓰게 해주세요.’ 앞으로 제가 할 일은 글쓰기가 ‘일’이 된 것처럼, 그리움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처럼, 신앙의 당위성을 지키는 겁니다. 
한때 공적영지(空寂靈知)를 닉네임으로 썼을 만큼 이 말을 좋아하는데, 완전한 자유를 표현하는 데 이보다 더 멋진 단어가 또 있을까요. 그 경지를 언젠가 소설로도 꼭 그려보고 싶습니다.” 

엄마(유일학림 2기·박희정 교도) 치맛자락을 잡고 교당을 따라다니던 아이. 열두 살 무렵, 장래희망이 작가라고 말하며 눈을 반짝이던 그 아이는 훗날 작가가 됐다. 부산(집)의 바다를 산책하면서 창작 활동을 하고 있는 그. 대화 끝, 그가 마음을 건넨다. 

“파도는 끊임없이 밀려오지만, 항상 똑같은 파도가 아니에요. 인생도 늘 똑같지 않을 거고, 변화가 있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높낮이를 보고 파도를 판단하는 것이 어리석은 것처럼, 우리 삶의 굴곡도 굳이 판단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요. 아픔이 아름다움으로 보일 때가 있을 거니까요.”

[2023년 6월 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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