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원 소장
이준원 소장

[원불교신문=이준원 소장] 고대 이집트 신화에 최초의 우주는 빛도 없는 심연(深淵), 어둠의 바다인 ‘누(Nu)’였다. 남성(양)도 여성(음)도 아닌 중성, 자웅동체다. 혼돈의 상태에서 ‘벤벤(Ben-ben)’이란 언덕이 솟아올라, 최초의 신 ‘아툼(Atum)’이 나왔다. 텅 빈 고요 공적(空寂)에서 스스로 생겨났다. 창조의 신 아툼은 태양신 ‘라(Ra)’를 창조했다. 태양신이 공기의 신과 습기의 신을 만들고, 뒤이어 여러 신들과 수많은 생명이 탄생했다. 도시가 열리고 인구가 증가하며 문명이 발달했다. 

신화는 초월과 현존, 본원과 현상, 상상과 현실의 창세기다. 이집트 신화에서 공적영지의 광명, 진공묘유의 조화를 보는 듯하다. 분석심리학의 태두(太斗) 칼 융(1875~1961)은 신화를 ‘집단 무의식’이라고 했다. 무의식은 영적이고 신성하다. 시공을 초월해 민족의 마음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원형(原型)의 세계, 신화다. 

자아의식의 심연에 무의식이 있다.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는 어디인가? 의식은 무의식의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이다. 우리는 광대무량 우주 속 떠돌이별과 같다. 텅 비어 있는 듯하지만 영기(靈氣)가 충만한 우주다. ‘텅 빈 충만(Empty fullness)’이다. 우주의 심연은 있는 듯 없는 듯 약존약무(若存若無), 유무초월의 공(空)이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게 아니다. 육조 혜능 선사는 도를 깨친 후에 보림함축·묵언안식(保任含蓄·默言安息)을 16년이나 했다. 그 연유가 무엇일까? 능히 멈춤이 있어 능히 나아감이 있다. 

사람의 기운은 두 가지가 있다. 맑은 기운은 하늘로 오르고, 탁한 기운은 땅으로 처진다(<대종경> 천도품 23장). 하늘 기운과 합한 사람이 큰 사람이다(<대종경> 불지품 11장). 이집트 벽화 ‘사자(死者)의 서(書)’를 보면, 이승에서 저승 가는 길목에서 심판을 한다. 정의와 지혜의 여신 마아트(Maat)의 깃털과 망자의 심장을 저울에 놓고 무게를 잰다. 깃털과 무게가 같거나 가벼운 영혼은 하늘에서 영생을 누린다. 

세 가지 저울이 있다. 양심의 저울, 민심의 저울, 천심의 저울이다. 삼심(三心)으로 보는 삼심(三審)이다. 소태산은 열반을 앞두고 “지금은 참으로 심판기라 믿음이 엷은 사람은 시들 것이요, 믿음이 굳은 사람은 결실을 보리라”(<대종경> 부촉품 4장)이라고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매순간 양심, 민심, 천심의 심판이다.

거울앞 다가선다 안과 밖 없는 거울/생각의 그림자도 사라진 자리에 영혼이 보인다/수많은 영혼들의 날갯짓 소리/빛따라 비상하고 어둠속에 사라진다.

/솔로몬연구소

[2023년 6월 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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