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효진 교도
주효진 교도

[원불교신문=주효진 교도] 어릴 때 외갓집에서 이모 따라 교당에 놀러갔던 게 나와 원불교의 첫 인연이다. 종교로 원불교를 만나게 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갑자기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우리 가족이 많이 힘들었을 때 어머니께서 교당에 입교를 시켜주셨다. 

동생과 나는 매주 법회도 보고 훈련도 나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고 있었다. 고등학생이 되어 진로를 고민할 때 나도 교무님처럼 힘든 사람을 도와주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3이 되어 나는 어머니께 출가를 하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어머니는 다시 생각해 보라고 하셨다. 일찍 남편을 여의고 홀로 키운 딸이 시집도 안 가고 출가를 하겠다고 하니 반대하실 만도 했다. 그래도 나는 뜻을 굽히지 않고 원불교학과에 입학을 하고 출신교당에서 간사생활을 시작했다. 

매주 교당에서 어머니를 보는 것이 조금 어색했지만, 교당에서 많이 배우며 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간사 4개월차에 교통사고가 나서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됐다. 어머니는 병원에서 간호해 주시면서 매일매일 ‘다시 공부해서 일반 대학을 가라’고 말씀하셨다. 한 달여간 하루도 빠짐없이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는 것이 부모에게 배은하는 건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어 다시 공부해 간호대학을 갔다. 

간호대학을 가서도 그 지역에 있는 교당 청년법회에 참석하고, 잠깐 다른 지역에서 공부할 때에도 교당을 찾았다. 처음 뜻과 다르게 살아간다고 하여 주변인들의 눈치를 보며, 이 법을 떠나는 것으로 나 스스로에게 벌을 주고 싶지 않았다. 출가·재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느 자리에서든지 서원을 굳건히 세우고 살아가는 것이 소태산 대종사의 멋진 제자가 아닐까 생각된다.
 

소중한 나를 챙기며 
여럿을 위해 살겠다는
서원으로 행복한 재가의 삶

25년 전 나의 출가 서원은 ‘나보다는 남을 위해, 하나보다는 여럿을 위해 살겠다’ 였다. 하지만 이 법을 오래 공부 하다보니 가장 중요한 것은 나라는 걸 깨닫고, 나를 챙기며 여럿을 위해 살겠다고 서원을 다시 세웠다. 

대학에서 만난 남자친구를 남편으로 맞았고 4명의 아이를 낳았다. 결혼 후 신혼 때는 첫 아이와 둘이서만 교당에 나갔다. 남편에게는 출퇴근길에 차에서 법문을 매일 듣기만 하라고 했다. 법회 끝날 때까지 주차장에서 기다리던 남편이 행사 때 공양하러 교당에 들어오기 시작해서 청소도 하고 교당에 손볼 곳을 가끔 봐줬다. 신랑은 그때도 밥값하는 거라고 했다. 그랬던 남편이 지금은 부회장이라는 직책을 맡아 교당의 주인이 됐고, 네 아이들은 교당에서 마음공부하며 행복한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다.

서원을 세웠던 출가자의 삶에서 간호사가 되어 병원에서, 보건소에서 지금은 학교 보건실에서 여럿을 위해 도움을 주며 살아가고 있는 재가로서의 삶도 소중하고 행복하다.

원불교를 사이비라고 하던 남편도 부회장 역할을 하게 하고, 네 아이도 입교시켜 교도 수도 늘이면서 찬찬히 교화하고 있다. 나중에 네 아이들이 또 아이를 낳아서 입교시키면 교도 수가 더 늘어난다는 생각에 벌써 행복하다.

/음성교당

[2023년 6월 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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