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원 교도
김승원 교도

[원불교신문=김승원 교도] 선을 하다 보면 간혹 일심이 되지 못하고 지난날이 떠오른다. 어리석었던 그때 그 후회감이 마음을 요란하게 만든다. 내 주변머리로는 ‘그 환경에 따라 그럴 수밖에 없었다’며 일어나는 마음을 꾸짖어 다시 가라앉힐 뿐이다.

다행히도 원불교와 이 대도정법을 만나 돌고 도는 이치를 터득하게 됐으니 조금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아내에게는 계속 미안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다시 되새겨 보면 지금으로부터 약 64년 전, 아내가 둘째 아들을 낳고 약 일주일이 지난 때였던 것 같다. 갑자기 몸이 아프다며 몸져누우니 다급히 의사에게 왕진을 청해 진찰을 받았다. 진찰을 받은 결과 늑막염이었다. 

처방에 따라 치료했지만 늑막염이 폐결핵으로, 폐결핵이 폐암으로까지 번져버렸다. 세월은 무려 30여 년이 흘렀고, 종국에는 의사의 말이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으니 서울 원자력병원으로 가보라”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다니던 직장도 사표를 내고 부랴부랴 서울을 거쳐 안산에 허름한 초가집에 방 한 칸을 얻어 들게 되면서 통원치료를 시작했다. 하루에 한 번 병원을 왕래하던 그때, 어느 날인가 셀마라는 태풍(1987년)이 지나가면서 비바람이 불며 소낙비가 기승을 부렸다.
 

한때 고통과 괴로움도 있지만
기쁜 일도 생긴다

결국은 마당 구석에 세워진 화장실 드럼통에 물이 고이고 오수가 뒤범벅되면서 흘러넘쳤다. 그것들이 빗물과 함께 마당을 거쳐 부엌으로, 또 방으로 들어와 하는 수 없이 몸만 빠져나왔다. 이 곤경을 본 원불교 교도 이성준 씨가 교당에 가 운타원 이운숙 교무님에게 알려 교도님들과 십시일반으로 옷이며 쌀, 이불 등을 걷어서 나를 찾았다. 이 일로 원불교와 인연이 되어 원불교를 다니게 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는 병원에 입원하고, 열반의 길을 떠났다.

아내를 보내고 얼마 후에 무슨 일로 도장이 필요하게 됐다. 도장포에 갔다가 도장 새기는 것을 보니 나도 할 것만 같았다. 그 자리에서 설명을 듣고 며칠간 연습해 도일시장 자리에 장소를 정하니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유지를 하게 됐다. 그리고 아들이 어디서 듣고 왔는지 서각관이 개설됐으니 “아버지, 그것(서각)도 함께 배우자”고 권하기에 우리 부자는 틈나는 대로 가서 함께 배워 서각과 도장을 해왔다.

이것으로 많은 사람에게 칭찬받았는데, 또 얼마 전에는 한국 인장협회 간부들이 찾아와 벽에 걸려있는 미국 모 대학에서 보내온 감사장과 대사들과 함께 찍은 사진, 천자문 병풍 등을 찍어 가면서 “작품 하나를 보내달라”고 했다. 

크게 생각하지 않고 “그러마” 답한 후 난 그림 하나를 서각해 보낸 것이 금상이라는 소식으로 돌아왔다. 상을 타고 보니 참 기쁘면서 ‘한때는 고통과 괴로움, 절망으로 기울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이런 일도 있구나’하면서 만물은 돌고 돈다고 하신 그 가르침을 절실하게 느낀다.

*본 수기는 경기인천교구 ‘더좋은아빠되기운동’ 중 진행된 행복한 가정 만들기 사례담 발표 시간에 발표된 내용이다.

/안산교당

[2023년 6월 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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