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태산 대종사는 깨달음을 얻은 후 ‘세상과 함께’ 잘 사는 방법을 고민했고, 이를 방언공사와 저축조합 등을 통해 직접 보여줬다. 이러한 정신을 이어받아 ‘그 지역과 그곳의 사람을 위한 종교의 역할’을 살려내고 있는 교화현장의 이야기를 모아봤다.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원불교’라는 주제로 열린 본 좌담은 5월 31일 줌(Zoom)으로 진행됐고, 류응주 교무(여산교당), 박성은 교무(추부교당), 이원우 교무(물금교당), 송재도 교무(좌포교당)이 함께했다. 이번 이야기는 6월 셋째 주와 넷째 주에 걸쳐 총 2회 게재될 예정이다.
 

지역사회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이원우: 발령받기 전에는 이런 지역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물금교당이 위치한 양산은 인구는 36만 명이고, 그중 장애인이 5.6%(1만 6천여 명)이다. 장애 청소년학교가 2~3개 있는데, 교당 가까이에 발달장애 아이를 둔 학부모 6명이 공동 숙식하며 자녀를 공동 양육하는 행복지구학교 ‘뭐든학교’가 있다. 현재 문화사회부와 함께 종교문화나눔사업으로 뭐든학교 아이들과 연극 수업을 하고 있다. 그 외에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한 나눔·기탁 사업과 지역 노인회관 등을 방문해 도시락 나눔과 김치 나눔 사업 등도 한다. 사회적기업에 직접 투자해 학부모나 초등교사 대상 요가 수업도 했었다.

류응주: 익산시에서 거의 평생을 살았는데도, 여산에 와본 적이 별로 없다. 여산교당은 부설 기관으로 노인복지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기관이 생기고 15년 정도 어려움이 있었지만, 기관이 안정되기 시작하면서 교당도 함께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지역사회에 복지를 실현하는 일은 ‘교당’의 힘만으로는 어렵다. 4년 전, 정부의 노인복지정책에 따라 우리 센터는 지역의 거점센터가 됐다. 현재 500명의 노인을 돌보고 있고, 교당에서 하는 노인대학, 노인일자리사업, 도시락·밑반찬 사업까지 더하면 800여 명을 관리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지역사회에서 교무의 위상이 달라졌다. 여산에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이웃 종교 성지, 천년 넘은 사찰도 있지만 20년 된 원불교만 이런 일을 하고 있다. 우리 교리나, 선진들에게 물려받은 유전자 자체에 지역과 함께하고 공존하려는 마음이 있어서 가능한 일인 것 같다.

지역사회에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기관 운영 통해 역할 해야

                         -류응주

송재도: 좌포교당은 대산종사탄생가가 있고, 소태산 대종사께서도 친히 다녀간 곳이다. 지역사회에서 일찌감치 야학 등을 통해 교육에 공을 들여 일찍 눈을 틔웠지만, 젊은 사람들이 빠져나가면서 전라북도와 진안군 내에서 일찍 고령화가 됐다. 그래서 교당에 부임한 후 아들이나 손자의 역할이나 책임질 수 있는 것들을 생각했다. 노인일자리사업을 오랫동안 해 온 기관들은 있었지만, 교당에서 교당근무자가 교화와 직접 연계하려는 고민이라 부각이 많이 됐다.

박성은: 추부교당은 본래 ‘쉬고 싶어서 오려는 교당’으로 발령 경쟁률이 치열했다고 한다. 그 경쟁을 뚫고 오게 됐는데, 오자마자 지붕이 샜다. 공사 견적이 3천만 원 나왔다. 그 돈을 교화에 쓴다면 신나게 마련할 텐데, 건물 유지보수에 그만한 비용을 들여야 한다는 것과 교도가 없는 현실이 슬펐다. 교화 방향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고, 교도님들과 ‘사람들이 찾아오는 교당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회의를 했다. “사람들이 오게 하는 데 필요하다면 일원상을 떼자”는 얘기까지 됐다. 교당이 담이 없고 추부 지역 유동 인구가 2만 명 정도 된다. 가능성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교당 정원 가꾸기에 주력했다. 지역사회에 처음 와서 100일 기도 기간에 지역 관공서를 모두 돌았다. 동네 마트나 세탁소도 일부러 여러 곳을 다니며 원불교와 원불교 교무를 알렸다. 교도회장님에게 ‘추부에 외국인 노동자가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상담소를 생각했고, 도서관에 책이 너무 없는 것을 보고 도서관 역할을 교당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마음 한잔’이라는 간판을 걸고 교당 문을 열어놓는다. 지역 사람들이 스스럼없이 교당에 드나들게 됐고, 기름을 짜면 교당에 한 병을 가져다준다. 지역사회에서 교당 문턱이 낮아진 게 반갑다.

교당 교도만의 교무가 아니라

지역사회의 교무여야

                   -이원우

지역과 함께하기 위해 어떻게 노력했나.
송재도: 교도님들이나 지역민들이 모두 농업이 생계이다 보니, 처음에는 ‘교무님이 뭘 알간’이라는 반응이 많았다. 그래서 농업경영체로 등록하고 농협 정조합원 자격도 갖췄다. 똑같이 농업인으로서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반보나 한보 정도 앞선 지식(선진농법, 친환경농법 등)을 전해주는 과정에서 공감과 마음을 얻었다.

류응주: 지속적으로 베풀어야 교당에 오게 할 수 있다. 교당 산하 센터가 있고, 전임 교무님이 노인대학이라든지 무에서 유를 창조하려고 노력한 과정들 덕분에 지금 역할하기가 수월하다. 센터에서 급여가 나오니까 용금 등도 걱정 없이 교화와 지역사회에 시간과 비용을 투자할 수 있다. 이런 제반 활동이 아니라면 일반 시골 교당에서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다. 교화 환경은 점점 더 나빠질 확률이 높다. 교무들이 지역사회에서 뿌리내리고 살기 위해서는 이러한 기관 운영을 통해 지역사회에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가 무엇으로 보람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가 최대 이슈

                                   -박성은

박성은: 추부교당에서 이런저런 활동을 해보겠다고 했더니 ‘뭐 하러 그런 걸 하냐. 일 벌이지 마라’와 같은 말을 많이 들었다. 교무들이 이런 활동에 관심이 없고, 어떻게 하는지 잘 물어보지 않는다. 교무에게 즐겁고 유익한 마음이 없는데 어떤 것이 가능하겠는가. ‘우리가 무엇으로 보람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가 최대 이슈라고 본다. ‘더 이상 망할 수 없다’는 심정으로 어떤 시도든 해봐야 한다. 

이원우: 교당 교무는 교도 다섯 명만의 교무가 아니라 지역사회의 교무여야 한다는 것을 계속 설명하면서, 처음에는 일단 지역사회 활동을 저지르고 뒤에 교도님들께 이해를 구하는 식으로 일을 추진했다. 이러한 뜻을 교도회장님에게 먼저 설명했더니 왕래하면서 후원을 적극적으로 해주셨고, 교도님들에게 교무의 뜻을 대신 설명해줬다. 지역사회에서 교당이 어떤 역할을 할까를 생각해 보면, 사실 교당에 활동할 사람이나 자원이 있어야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6급지이고 용금 해결도 되지 않지만, 일단 판을 벌였더니 모이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교당도 활력을 얻었다. 
 

고령화 된 지역에서

아들이나 손자의 역할 생각

                            -송재도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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