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전라북도 고창교당 원광유치원을 다니면서 처음 원불교를 접했다. 하지만 종교 생활은 하지 않다가 대학 졸업 후 2009년에 컴퓨터그래픽 관련 유학을 오면서 고창교당 교도인 어머니와 친분 있는 정법일 교무님의 권유로 샌프란시스코교당에서 하숙을 하게 됐다. 미국 생활에 적응할 때까지 두어 달만 지내려고 했는데, 교당 생활에 푹 빠져 결국 2014년 대학원 졸업 때까지 교당에 머물게 됐다. 그사이 새롭게 원준이라는 법명도 받았다.

이처럼 멋진 종교 가르침
교무님들은 교당에서 지내는 하숙생으로서 법회 참석을 꼭 부탁했다. 하지만 나는 주말이면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어울리다가 법회에 자주 빠졌다. 어느 날 어김없이 늦잠을 자고 교무님을 피해 몰래 교당 밖으로 나가려다 법회를 마친 교무님과 딱 마주쳤다. 면목 없어 하는 내게 교무님은 “요즘 얼마나 피곤했으면 아침잠이 부족하겠냐”며 진심으로 걱정을 해줬다. 꾸중하지 않는 교무님을 보며 ‘화를 낼 만도 한데 어떻게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주실 수 있을까’라는 생각과 ‘마음공부를 하면 이렇게 마음을 쓸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궁금함이 생기면서 원불교 마음공부에 관심을 갖게 됐다.
 

유학 생활을 하는 동안 학업에 정진하기 위해서는 외로움을 잘 견디고 본인의 중심을 갖는 게 중요했다. 그런 생활 속에서 교당은 고향 집 같은 곳이었고, 교무님과 함께 하숙하던 청년교도들은 가족과도 같았다. 덕분에 학업을 잘 마칠 수 있었다.

이후 미국에서 가고 싶었던 애니메이션 회사에 지원해 면접을 볼 기회가 생겼다. 마지막 대상자로 4~5명이 선정돼 있다고 말해줬다. 이 중 한 명만 선발되는 것이었다.

면접관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냐?”고 질문했다. 나는 나의 원불교 경험을 이야기했고, 면접을 마쳤다. 감사하게도 합격 소식을 듣게 됐다. 모든 지원자가 비슷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을 텐데 다른 점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보면 ‘원불교 마음공부’ 이야기 덕분인 것 같다.

나는 원불교의 가르침 중 ‘성불제중’이라는 가르침을 가장 좋아한다. 원불교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교무님들께 “내가 공부하고 수행해서 깨달음을 얻고 나아가 그것을 통해 다른 이들이 깨달을 수 있도록 이로움을 주라”는 가르침을 듣고 ‘아, 이처럼 멋진 종교 가르침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나의 성장과 안위만을 생각하게 될 때 성불제중의 큰 가르침을 생각하며 나의 좁은 마음을 반성하게 된다. 더불어 나 또한 원불교 법에 기대 큰 꿈을 꿀 수 있다는 것에 가슴이 설렌다.
 

원불교 성장은 교육·의료·복지에 실질적 도움을 주었기 때문
미국사회 인종·빈부·문화간 갈등 등에 큰 역할 할 수 있을 것

‘있는 그대로의 나’ 받아들이며 성숙
윤선중 교무님은 스승님으로 혹은 누이나 친구처럼 가깝게 지냈다. 하루는 교무님과 회사생활에 지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미국에서 아시아인으로서 차별받으며 성과를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끼던 고민이었다. 그것에 대해 교무님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조언을 해줬지만, 당시의 나는 교무님의 조언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고, 서운함을 느꼈다. 그렇게 교무님의 조언이 마음에 맴돌던 어느 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바라볼 수 있을 때 다른 사람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 사회를 살아가는 나의 관점이 조금 더 성숙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또 원불교를 만나 생활하던 중 결혼 후 아내가 입교할 때가 가장 기뻤다. 평생 함께 마음공부를 할 수 있는 도반이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또 최근에는 태어난 아이의 이름을 법명이자 이름으로 지었는데, 아이의 삶이 원불교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 기쁘다.

원만한 법, 거부감 적어 큰 장점
미국 사회에서 원불교가 갖는 큰 장점은 원만한 법으로 수행을 강조해 거부감이 적다는 것이다. 수많은 인종과 문화가 어우러져 살아가는 미국 사회에서 한 특정 부분에 믿음과 양식이 강요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원불교가 한국에서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 즉 교육, 의료, 복지에 대한 다른 어떤 종교보다 실질적인 도움을 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원불교의 이러한 기존의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의 경험을 미국 사회에 투영한다면 인종, 빈부, 문화 등 수많은 갈등이 존재하는 이곳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원불교에 대해서 거의 알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원불교를 보통 ‘매우 현대화된, 마음공부 수행이 강조되는 종교’라고 설명한다. 더불어 그런 설명을 하는 나를 통해 원불교에 대한 인식을 갖게 될 것 같아서 말과 행동을 바르게 하려고 조금 더 노력하게 된다.

원기105년(2020) 처음으로 교무님들께 서부훈련원 건립계획을 들었다. 서부의 대표적 주인 캘리포니아만 해도 대한민국 크기의 2배나 되는 넓은 지역인데, 재가출가 교도들이 밀도 높은 훈련을 할 수 있는 훈련원이 없었기 때문이다.
 

듣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였다. 미국 대부분 교당이 힘겹게 교당을 일궈 가고 있었고, 당시는 미국총부가 세워지기 전이어서 교당들은 각각 하나의 우주처럼,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새 양윤성 교무님을 중심으로 서부훈련원 건립이 추진돼 원기106년(2021)에 미주서부훈련원 기공식을 했다. 이러한 과정을 보며, ‘이루지 못할 것 같은 큰 사업이라도 세상과 공을 위하는 사업은 이뤄진다’는 것을 알았다. 또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할 일을 실현한 교무님들의 용기와 노력에 절로 고개를 숙이게 됐다. 나도 마음공부에 정진해서 이런 큰 꿈을 꾸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다.

기회의 땅, 많은 가능성
샌프란시스코는 로스앤젤레스와 더불어 서부를 대표하는 도시다. 또 전 세계 어느 도시보다 수많은 인종과 젠더 및 성소수자 사회가 존재하고,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많은 부를 창출하면서도 수많은 노숙자와 빈민들이 고통받는 곳이다. 이처럼 많은 갈등이 존재하고 끊임없는 화합이 필요한 이곳에서, 원불교가 소태산 대종사님의 가르침과 법을 통해 사회의 갈등을 봉합하고 화합을 이끌며, 지역사회에 대한 헌신과 봉사로 존경받는 종교로 성장하면 좋겠다.

많은 사람이 오랫동안 미국을 ‘기회의 땅’이라고 했다. 어쩌면 상투적이고 식상한 이 말이, 나는 지금도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세계의 수많은 인재가 꿈과 목표를 갖고 이곳으로 오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원불교가 더욱 성장할 수 있도록 많은 교도들이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

[2023년 6월 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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