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재 교무
허선재 교무

[원불교신문=허선재 교무] “교무님, 올해부터는 저희 둘만 법회를 보나요?”

고등학교 2학년, 중학교 3학년인 형제가 물었다. 북일교당 학생회 주축이었던 고3 학생 6명이 올해 2월에 모두 졸업하면서 커다란 공백이 생겼다. 잠자는 학생회원들에게 연락을 돌려봐도 묵묵부답이다. 결국 고2, 중3 형제와 함께 셋이 법회를 보게 됐다.

졸업한 학생들의 빈 자리는 크게 다가왔다. 주중에 교립학교로 법회를 보러 다니며 아이들을 교당으로 인도하기 위해 꾸준히 공들여보지만, 아이들은 어물어물 답을 피할 뿐이다. 시간이 흘러 토요일 오후 5시 30분, 학생법회를 본다. 그런데 그 형제가 법회에 나오지 않는 날이면 자연스레 휴회가 되어버린다. 그럴 때면 텅 빈 법당의 모습이 공허해 보인다. 그리고 자책으로 이어진다. ‘학생들이 교당에 오지 않는 요인이 혹시 나에게 있는 건 아닐까?’, ‘좀 더 재밌게 법회를 볼 수 있으면 좋겠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요소 중에 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게 있나?’ 

스스로 부족한 부분만 바라보다가 다시 생각을 전환한다. 꼭 재미여야 할까. 사람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에 시간과 에너지를 쓴다. 그렇다면 법회 시간이 자신의 삶에 의미 있는 시간이 되고, 꼭 필요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보자. 

이때부터 나는 법회의 방향을 새로 잡았다. 그리고 마음의 원리와 인과가 실제 삶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전개되는지 예를 들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마음을 공부하는 그 시간이 지나치게 고루하고, 딱딱하고, 관념적인 것이 아닌 보편적이고, 실질적인 것이 되도록 주의했다. 각자가 생활 속에서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는지, 그 마음이 경계 상황에서 작용할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났는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문답했다.

그렇게 법회를 보던 어느 날, 한 교도님의 소개로 원광고등학교 2학년 학생 한 명이 교당에 나오게 됐다. 한두 번 나오고 말 줄 알았던 아이가 석 달째 꾸준히 온다. 원광고등학교를 다니긴 해도 원불교에 대해 잘 모르는 학생이었다. 궁금해서 물었다. “교당 다니는 거 재밌니? 어떤 부분이 좋아서 나오는 거야?” 그 학생이 답했다. “마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듣는 게 좋아요. 학교에서는 이런 거 안 배우고 평소에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도 없는데, 교당 오면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아요.” 

교화에 정답이 없다고는 하지만 내심 잘못된 방향으로, 안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불안한 마음이 있었다. 그 학생의 대답을 듣고 나서부턴 마음이 놓였다. 그렇게 한 학기가 끝나가는 6월. 꾸준히 법회를 보러 가던 교립학교의 학생이 드디어 교당으로 오게 됐다. 알고 보니 우리 교당 한 학생과 초등학교 친구라고 한다. 교당에서 첫 법회를 보고 나서, 앞으로도 꾸준히 나오겠다고 한다. 마음에 희망이 싹튼다. “우리 함께 마음공부 하자. 우리 교당에서 만나자.” 

/북일교당

[2023년 6월 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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