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교조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


소태산 대종사(1891~1943)의 성은 박씨(朴氏), 어릴 적 이름은 진섭(鎭燮)이며, 결혼 후 자()를 처화(處化)라 하였다. 1916년 깨달음(大覺)을 얻은 후 스스로 이름을 중빈(重彬)’이라 하고, 소태산(少太山)이라는 호()를 사용하였다.

소태산 대종사 열반 후 정산 송규 종법사가 원각성존(圓覺聖尊)’이란 존호(尊號)를 올렸다. 그러나 원불교 교도들은 이 세상 모든 생령의 가장 큰 스승이라는 의미인 대종사(大宗師)’라는 존칭을 주로 사용한다.

소태산 대종사의 키는 175정도이며, 체중은 90으로 걸음은 조금 느리게 걸었다. 목소리는 쇳소리가 나는 금성(金聲)에 약간 나무를 두드리는 소리와 같은 목성木聲이 섞였고, 평상시에는 목성 같으나 설법할 때에는 금성이 많았다.

전면 상궁(上宮)에는 뚜렷한 원일훈(圓日暈)의 백호광명(白毫光明)이 항상 비쳤고, 얼굴은 보름달 같으며 머리는 사방이 고르고 그 빛은 자금색(紫金色)이었다. 치아(齒牙)는 희되 좀 푸른빛을 띠었고, 두 손 모두 손바닥을 좌우 일직선으로 가로지르는 굵은 선으로 된 막금에 잔금이 약간 있으며, 두 발은 모두 발바닥이 평평하였다. 머리털은 뻣세었으나 40세 되면서부터 빠지기 시작하여 열반할 때인 53세에는 거의 다 빠졌다

소태산 대종사는 식사를 체중에 비해 좀 적게 하고 담박한 음식을 좋아하였고, 수면 시간은 보통이었다. 살성은 부드럽고 윤활하나 피부에 탈이 나면 잘 낫지 않으며, 단전(丹田)은 작은 주발 뚜껑 하나 엎어 놓은 것같이 불룩하였다. 건강은 깨달음을 얻은 이후로 건강한 편이었으나, 혹 복잡한 일이 있을 때는 간혹 기운이 오르는 증세(상기증, 上氣症)가 있었고, 뒷머리 목 근처에 습종(濕腫)이 있어 10여 년간 고생하였다.

심성은 큰 바다와 같이 깊고 활달하며 태산같이 크고 무거우나 인심의 기미(幾微)를 통찰하기는 빠르게 하였고, 근력(筋力)은 보통을 벗어나는 힘이었다. 성질은 범인으로서는 측량하지 못할 일이나 평상심(平常心)을 쓰되 열()과 성()이 전체가 되는 것 같았고, 완급(緩急)이 골라 맞으나 급한 편이 좀 승하고, 희로애락이 골라 맞으나 희로애락을 쓰고 나면 반드시 법()이 되어서 대중에게 유익을 주었다.

외인(外人) 교제에는 겸양하고 다습게 대하였으나 외인들은 대부분 무섭게 알며 저 어른이 곧 영웅이 아니시냐?’라고 말하였으며, 교도들은 다습게 알고 자애로운 어머님 같으시다.’라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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