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이현천 기자] 요즘 사람들은 뭐든지 ‘맞춤’인 것들을 소비하고, 이용한다. 이런 시대적 흐름에 따라 각자의 취향을 좇는 이들이 파고 드는 곳이 생겼다. 바로 독립서점이다. 한때 대형서점을 이용하던 사람들은 개인 취향에 맞는 책을 추천해주는 독립서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점주의 취향과 나의 취향이 맞아떨어질 때, 같은 서점을 이용하는 고객끼리 공감대를 형성해 커뮤니티가 이뤄질 때 등 다양한 포인트를 이유로 사람들은 독립서점을 찾는다.또 독립서점은 취향을 쫓는 이들을 위한 역할과 더불어 지역사회 활성화에 마중물 역할도 한다. 어린이들의 문화 체험, 학부모들의 커뮤니티, 지역의 문화 격차 개선에도 독립서점이 활약해 그 활동을 직접 보고 체험하려는 사람들이 찾는 공간이 된다.
 

귤다방.
귤다방.

마을의 사랑방
제주시 조천읍에 위치한 ‘귤다방’이라는 독립서점은 시부모가 남겨준 귤밭의 활용을 찾다가 시작됐다. 빠르게 개발되는 제주에서 사라져가는 귤밭을 지켜야겠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농사를 짓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책방지기인 강선미 씨는 귤밭을 체험농장으로 바꾸고, 그 안에 쉴 공간으로 카페를 조성하고 책을 들여놓았다. 책방 ‘귤다방’의 시작이다. 귤다방은 귤밭 일부를 유지하고, 동물농장과 캠핑존, 서점의 구조로 구성돼 있다. 너른 귤밭이 조천읍의 문화공간으로 변모한 것이다. 덕분에 조천읍과 인근의 어린이 200여 명과 그 부모들이 귤다방의 주요 고객이 됐다.

아이들은 책방에 놀러 와 동물과 교류하고, 자연을 온몸으로 체험한다. 실내에서는 피아노도 치고 맛있는 간식도 먹는다. 그런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들은 따뜻한 차와 책방지기가 추천하는 책을 보며 아이들의 교육을 고민해보기도 하는 휴식의 시간을 보낸다. 강선미 씨의 남편이 캠핑존에 불을 붙이면 캠프파이어, 불멍의 시간이 만들어진다.

이외에도 동네주민, 인근 마을에서도 외진 곳에 있는 귤다방을 찾는 이들이 많다. 책을 찾는 이들, 지역사회의 새로움을 일으키는 공간을 찾아오는 것이다. 그렇게 귤다방은 마을의 ‘사랑방’의 역할을 맡았다.
 

귤다방.
귤다방.

맞춤형 소비에 익숙한 세대 겨냥
단순 서점 넘어 지역의 문화공간으로
“더디고 느린 길 함께 가자” 제안

위트앤시니컬.
위트앤시니컬.

세상 어딘가 하나쯤, 그중 하나
서울시 혜화동에 있는 시집 서점 ‘위트앤시니컬’은 유희경 시인이 운영하는 시집 전문 서점이다. 위트앤시니컬은 70년 역사를 지닌 동양서림에 자리 잡은 점포 내 점포다. 동양서림은 서울 시내에 제일 오래 그 자리를 지켜온 신간 서점으로,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선정된 곳이기도 하다. 

위트앤시니컬의 간판에는 ‘세상 어딘가에 하나쯤, 그중 하나’라는 소개글이 쓰여있다. 보통 간판에는 장황한 선전이 담기겠지만, 시인이 연 서점이어서인지 감성적인 문장으로 서점을 찾은 고객에게 조심히 손 내밀 듯 다가온다.

뱅그르르 도는 계단을 오르면 조그마한 서가에 가득 찬 시집을 만날 수 있다. 색색으로 꾸며진 얇은 시집이 가득한 서가는 언뜻 보면 큰 그림을 보는 것 같은 감상을 선사한다. 서가 이곳저곳에 붙은 작은 포스트잇은 유 시인이 추천하는 시집에 대한 메시지가 담겨있다. 비치된 시집의 수는 약 1,500여 권. 평소 시에 관심이 있던 이라면 ‘노다지’라 할 정도의 양이고, 우연자연히 찾아온 이라도 본인의 취향을 저격당하는 시집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서점 한편에는 구매한 시집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유료 시 낭독회, 시와 음악이 함께하는 시&페스타, 시 창작 세미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위트앤시니컬.
위트앤시니컬.

영성·생태·문화 아울러
종교계도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움직이는 곳이 있다. 청주 쌍샘자연교회가 운영하는 독립서점 ‘돌베개’는 지역사회의 발전과 요구에 응한 대표적 사례로 손꼽힌다. 백영기 목사(쌍샘자연교회)는 “예전에는 시골에도 병원, 약국, 서점들이 다 있었는데 이제 사라져가고 있어요”라며 “농촌이 이대로 사라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필요에 따라 하나씩 하나씩 시작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돌베개.
돌베개.

쌍샘자연교회는 서점 외에도 도서관, 카페, 공방, 대안교육 등을 운영하며 영성과 생태(자연), 문화를 아우르는 마을공동체의 중심 역할을 한다. 이런 활동을 본 성도들도 산골마을에 따라 들어와 이제는 60여 호에 이른다. 백 목사는 자녀가 있는 성도들에게 적극적으로 이사를 권했다고 한다. “아이들이 어릴 때 시골에서 생태적 감수성을 키워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진다고 설득했죠. 성도 중 3분의 1 정도는 마을에서 함께 살고 있어요.” 

돌베개에서는 백 목사와 성도들이 공감한 생태와 자연, 공생의 메시지가 담긴 책들을 전문적으로 다룬다. 지역 아이들과 고객들은 이곳을 찾아 ‘자연과 어우러지는 삶의 문화’를 익히게 된다. 또 영성을 좇는 이들이나 책을 깊이 즐기는 이들을 위해 서점 위층을 스테이 공간(숙소)로 마련해 지친 이들의 휴식처로도 제공한다.
 

돌베게.
돌베개.

‘다시 생각해보자’고 말할 역할
개인의 취향을 저격하는 다양한 콘셉트와 형태의 독립서점은 각자의 자리에서 그곳을 찾는 이들에게 필요한 역할을 하면서 더욱 영역을 펼쳐나가고 있었다. 종교계는 과연 어디까지 이 시대 사람들에게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을까.

“종교는 남들이 하는 것을 다 쫓아가지 말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정말 이게 맞는가’ 이런 걸 자꾸 의문으로 던지는 거죠. 책방의 책으로는 ‘더 넓은 세상이 있다’, ‘아직 당신이 모르는 게 있다’고 제안하며 더디고 느리지만 함께 가자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백영기 목사의 이야기와 행동이 샘물을 길어 올리는 두레박처럼 마음에 닿는다.

[2023년 6월 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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