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유원경 기자] 내년이면 90세, 하지만 박성식 교도(신탄진교당)은 아직도 정정한 모습이었다. 퇴직 후 지금까지 30여 년간 〈원불교교전〉 사경 공부로 정성을 모으고 있었고, 그래서인지 “아직은 집중력이 좋은 편입니다. 정신건강도 육신의 건강도 괜찮은 것 같아요”라고 자부했다.

박 교도는 사경 공부에 정성인 이유에 대해 “다음 생에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오직 공부심이에요. 이렇게 공부하는 습관을 들여 다음 생에도 공부인의 삶을 살아가기 위함입니다”라고 설명했다. 평생의 삶을 되돌아봐도 진리 공부가 가장 귀했고,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 준 스승이 소태산 대종사였다는 고백도 더해졌다.

그러면서 보여준 그의 사경노트. 까만 가계부처럼 생긴 두툼한 노트가 수십 권, 그 안에는 〈정전〉과 〈대종경〉, 〈정산종사법어〉 등을 사경한 손글씨가 가득했다. 더 놀라운 건 박 교도는 한글사경 영문사경을 병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퇴직 전까지 했던 일이 (영어로) 통·번역하는 일이었습니다. ‘장동’이라는 신탄진 내 지역에 미군 탄약고가 있었거든요.” 젊은 시절, 높은 학력은 아니었지만 영어 회화와 독해력이 뛰어났던 그였기에 일찌감치 미군부대 장교들의 통역과 번역 일을 맡았었다.

“제가 사경을 하면서 한자어로 된 단어나 문장은 모르는 게 많았는데, 오히려 영문을 통해 알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사경을 영문으로도 하게 된 것이고요. 그렇게 공부하면서 이제는 법문사경이 제 삶의 낙이자 목표가 됐습니다.”
 

“내생에 가져갈 것, 
오직 공부심뿐”
젊은 시절 미군 장교 
통·번역 맡아

박 교도가 이토록 사경에 재미를 붙인 데에는 진리 공부에 대한 갈망이 컸던 이유가 있다. 처음 원불교와 인연이 된 것도 불연이 깊었던 그의 마음에서였다.

“치료를 받으러 한의원에 갔는데, 거기서 즉심시불(卽心是佛)이라는 문장을 보게 됐어요. 확 의심이 생겼죠. ‘마음이 곧 부처라는 말이 무슨 뜻일까?’ 하고요. 그곳의 한의사가 원불교 교도였고, 그 인연으로 대전교당을 찾아가게 됐어요.”

40대 중반, 그는 그렇게 원불교와 인연이 됐고, 박 교도는 “마음을 깨치면 부처다”라는 교무님의 말에 환희심을 갖게 됐다. 이후 원불교 교법을 통해 해탈을 얻고 부처를 이루겠다는 서원도 갖게 됐다. 

박 교도는 그렇게 한동안 대전교당에 다니다가 신탄진 지역에 교무님을 직접 모셔 법회를 운영하기도 했다. 당시 대전교당 교무에게 부탁해 자신의 사무실에서 법회를 운영했고, “신탄진 지역에 원불교 교당이 있으면 교화도 잘되고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교무님과 여러 교도들의 정성을 모아 교당 설립까지 추진했다. 

그는 교당 부지 마련을 위해 5,000만원을 희사했고, 교무와 교도들은 1억여 원을 들여 토지를 매입했다. 이후 교도들의 십시일반 정성이 더해지며 교당이 신축돼 오늘의 신탄진교당을 이뤘다. 그렇게 번듯한 교당이 생기고 나니 그에게 더없이 필요한 것은, 오직 신앙과 수행의 공부였다. 
 

30년간 써온 사경노트.
30년간 써온 사경노트.

60세를 넘기면서 퇴직한 그는 하던 일을 정리한 후 새롭게 인생의 목표를 세우며 오직 소태산 대종사의 공부로 살아보겠다고 서원했다. 또한 이번 생만의 공부가 아닌 다음 생에도 자신은 다시 이 회상의 공부인으로 살고 싶다고 말한다. 지금도 그는 어떤 일을 하다가도 자신이 세운 일과의 사경공부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책상에 앉아 교전을 편다.

“사경할 때가 가장 즐겁고 힘이 납니다. 물론 나이가 들면서 공부의 어려움을 느끼지만 이 법을 찾고 공부하고, 궁구하려는 이 마음과 정성은 다음 생에도 계속하지 않겠어요? 영어 공부도, 우리 법 공부도 계속 이어가면서 영생을 일관하고 싶습니다.”

[2023년 7월 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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