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다를 보러 가지 않았다. 어느 날 남기고 온 발자국이 그리워 다시 해변을 찾은 것이다. 모래 한 알 한 알을 헤집어 발자국의 흔적을 물었다. 시큰둥한 알갱이들은 부스스 손을 털며 파도를 손짓한다. 파도가 빼앗아 갔으니 바다로 나가 보란다. 사실 해변은 바다도 아니고 육지도 아니어서 늘 퉁명스럽다. 풍랑이 불면, 가끔 쓸려가고, 가끔 튕겨나가고, 그래서 누구는 바다가 되고, 또 누구는 육지가 된다. 가끔은 눈치 없는 아기 모래들이 사람의 발등에 올라타 탈출을 시도하지만 이내 털려나가고 만다. 그래서 내 발자국도 도둑맞은 것이다. 

아마, 내가 걸어온 길도 이랬을 것이다. 누군가의 흔적으로 상처받고, 또 어디론가 떠나려다 주저앉고…. 그렇게 지워져 버린 일상은 망망한 바다가 되어 출렁인다. 가끔은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누군가가 내 발자국을 부둥켜안고 기다릴지도 모른다는 착각이 잠을 깨운다. 또 애써 기억에서 꺼낸 누군가의 발자국이 지워질까 허둥대기도. 참, 다행이다. 모래처럼 쉽게 지워지지 않는 추억을 간직할 수 있어서.

나는 바다를 보러 가지 않았다. 어느 날 남기고 온 발자국이 그리웠을 뿐이다. 이미 지워져 깊은 바다에 침몰했을지라도, 나는 당신을 떠올리고 싶은 것이었다. 깨알 모래처럼 내 뇌리 속에 몰래 숨어 지금까지 따라와 준, 그대를 기억하고 싶은 것이다. 

당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그 해변에서 나는, 오늘도 서성인다.  

[2023년 7월 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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