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원 소장
이준원 소장

[원불교신문=이준원 소장] 청소년 시절 한때 헤르만 헤세(1877~1962)의 시와 소설을 접하고 살았다. “전쟁의 유일한 효능은 사랑이 증오보다, 이해가 분노보다, 평화가 전쟁보다 훨씬 고귀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뿐이다.” 그에게 있어서 미술은 상처 입은 영혼을 치유하기 위함이었다. 

사람은 왜 증오하고 분노하는가? 증오는 상대에게 공격적으로 대한다. 분노는 억눌린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때 폭발한다. 정치권력이 군중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할 때 비극을 빚는다. 히틀러의 유대인 홀로코스트, 관동 대지진 때의 조선인 학살이 대표적이다. 종교계와 언론계, 지식인이 양심의 등대 역할에 얼마나 충실했는지는 과거의 역사가 말해준다.

군국주의 시절 일본의 잘못을 사죄하고, 한일 간 화해에 앞장섰던 일본인 목회자가 있다. 오야마 레이지(1927~2023) 목사다. 유서 깊은 사찰의 범종, 교회 재산을 일제에 헌납한 조선인 친일파 승려, 목사와는 극명한 대조를 보인다.

1969년부터 1990년까지 초대 안동 교구장을 지낸 르네 뒤퐁(1929~) 신부가 있다. 1954년 전쟁으로 폐허화 된 한국에 로마 가톨릭 선교사로 와서 한국어 이름 두봉(杜峰)으로 개명했다. 가톨릭농민회의 정착에는 그의 형제적 우애와 목회자로서의 희생적 헌신이 거름이 됐다.

오야마 레이지 목사와 두봉 신부에게서 정교동심(政敎同心)의 한 전범(典範·본보기가 될 모범)을 본다. 정치권력에 직접적 저항이나 협력을 하지 아니하면서, 평범한 대중들이 스스로 깨어나서 더불어 바른길로 나아가도록 이끌었다.

대기업집단(재벌)의 기업가와 경영자의 고민 중 하나는 정치권력과의 관계 설정이다. 특정 정권과 너무 가까운 정경유착(政經癒着)은 위험한 단견(短見)이었음을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의 기업사가 보여주고 있다. 

일제 식민지 시절의 소태산, 해방 후 정산종사의 정교동심관에 대해 고찰하고 지금 시대에 맞게 새롭게 정립할 때다.

한때의 상황에 좌우되지 않고 멀리 내다 보아야 한다. 정치와 야합하거나 대립하지 않고 오로지 제생의세에 전념하는 것이 각자의 서원심에 부합할 것이다. 주산종사의 전재동포구호사업에 당시 미군정이 감화받아 도움을 준 사례를 보라. 교운이 부흥해야 할 교단 4대다!

/솔로몬연구소

[2023년 7월 5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