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1년, 소태산 대종사 삼밭재에서 기도 올리다

구수산 삼밭재 마당바위와 움막 터, 1943년(원기28) 촬영.
구수산 삼밭재 마당바위와 움막 터, 1943년(원기28) 촬영.

소태산 대종사는 11세 되던 시월 보름날, 영광군 군서면 마읍리 선산 종중(宗中) 시향제(時享祭)에 부친을 따라 참석하였다. 이때 산신에게 먼저 제사를 올리고 난 다음 선조에게 제사를 올리는 것이 이상한 생각이 들어 가장 학식이 많다는 분에게 물었다. 


소태산 대종사는 문답을 통해 산신을 만나면 자신의 평소 의문을 풀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와 산신령을 만나기 위해 집에서 3km여 떨어진 삼밭재 마당바위를 기도 장소로 정하였다. 나름대로 제물을 장만하여 기도를 올렸다. 기도 사실을 알게 된 부모님이 소태산 대종사의 정성에 감동하여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소태산 대종사는 결혼한 그해 말 15세까지 만 4년간 삼밭재에서 기도를 올렸다. 이듬해(1906) 처가에 갔다가 고대소설 이야기를 듣고 도사를 만나기 위해 스승을 찾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스승을 만날 수 없자 19세 시에는 부친에게 간청하여 삼밭재 마당바위 옆에 수도실(修道室)을 완성하였으나 20세에 부친이 열반하여 삼밭재 독공은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다. 


삼밭재 수도실 빈터에 1990년(원기75) 소태산 대종사의 삼밭재 마당바위 기도를 기념하여 김만주화 교도의 발원으로 목조 3칸 맞배지붕 17평 기도실을 신축하였다. 기도실 옆에는 소태산 대종사가 기도할 당시 사용하던 ‘삼령정(蔘嶺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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