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민소연 기자] “행복합니다~ 행보키입니다~”
라임 딱딱 맞는 그녀의 인사, 여기에 싱그러운 웃음과 옅은 경상도 말씨, 그리고 그만이 가진 하나가 더 있으니 바로 꽃향기다. 예쁘다고만 꽃이 아니라 진짜 꽃을 내린 꽃차. 들이며 산에서 꽃을 따고, 송이송이 덖어 말려내고, 알맞은 온도의 찻물을 부어 꽃에 다시 생명을 주는 ‘꽃차’라는 일. 백 송이에서 천 가지 색과 만 가지 향을 내는 꽃, 이복희 꽃차마이스터(법명 명진, 행보키의 꽃차 대표, 경산교당)의 삶도 그렇다. 
 

타고난 빛깔과 향기 찾아주는 꽃차
경산교당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위치한 ‘행보키의 꽃차’. ‘행복한 복희’를 빨리 말하다보니 저절로 ‘행보키’가 됐다는 그는 꽃차마이스터 혹은 꽃차소믈리에로 불리는 전문가다. 원래 사진찍는 걸 좋아해 꽃사진을 찍으러 다녔고, 그러다 만난 스승의 권유로 꽃차의 길에 들어섰다.

“활동적이고 어딜 다니는 걸 좋아하니 차는 안 맞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 색과 향, 맛 어느 하나 빠지는 게 없이 좋더라고요. 그 꽃에 가장 알맞은 수확시기, 가공 방법과 시간, 한 잔의 적정량, 찻물의 온도까지 맞춰내는 섬세함을 많이 배웠죠. 성격도 차분해졌고요.”

눈으로 색을 보고, 귀로 물소리를 듣고, 코로 향을 맡고, 혀로 맛을 보고, 손으로 온도를 가늠하며 비로소 마음으로도 마시는 꽃차. 이 다섯 감각 중 어느 한두 개에 치우치지 않고 고른 점에서 커피나 녹차보다 낫다고 치는 것이 꽃차다. 

“제일 좋아하는 건 목련차예요. 딱 적당할 때 봉오리째 따서 하루 시들림을 합니다. 이 시들림을 잘해야 꽃잎이 하나하나 제대로 펴져요. 백목련은 또 물이 100도가 됐을 때만 진한 노란색이 나옵니다. 손이 많이 가지만 그 맛을 보면 잊을 수가 없지요.”

‘자신이 뿌리내린 그 자리에서/자신이 타고난 그 빛깔과 향기로/꽃은 서둘지도 않고 게으르지도 않고/자기만의 최선을 다해 피어난다’고 시인은 노래했다(박노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중). 꽃도 그럴지니, 말렸다가 다시 살려내는 꽃차는 어떻겠는가. ‘타고난 그 빛깔과 향기’를, ‘자기만의 최선’을 찾아내 주는 순간, 꽃차하는 마음은 겸손해지고 숙연해지며 간절해진다.
 

‘행보키의 꽃차’ 대표, 꽃차만들기, 꽃차 젤리 클래스
예쁘고 활용도 높은 맞춤형 꽃차, MZ세대·SNS에서 열광
화사하고 이야깃거리 많은 찻자리로 사축이재, 교화에 활력

하루의 시들림, 1년의 기다림
꽃차는 시간의 미학이다. 꽃송이를 그냥 두는 시들림의 시간, 덖음이나 정제를 하며 차로 탄생하는 시간, 완전히 건조하는 시간, 병에 두고 가장 맛있는 1년까지의 기다림. 드디어 찻물을 붓고도, 꽃은 저마다의 시간을 들여 마른 몸 안에 응축했던 향과 맛을 피워낸다. 

“조금만 적게 넣어도 ‘희득쓰그리’하고, 조금만 많이 넣어도 먹기 힘듭니다. 메리골드 한 송이가 3인분의 차가 되는데, 눈에 좋다니 많이 넣고 우려내서는 맛없다, 쓰다고들 하거든요. 그럴 때 참 속상하죠.”

퍽 까다롭지만, 이토록 아름다운 꽃차는 특히 젊은 세대들과 SNS를 타고 인기몰이 중이다. 우유를 넣으면 라떼, 탄산을 넣으면 에이드, 다른 리큐르와 섞은 칵테일, 술을 넣어 하이볼로도 먹으니 쓰임도 두루두루 좋다. 또한 간에 좋은 팬지, 혈액순환에 좋은 맨드라미, 비염에 좋은 목련, 두통에 좋은 국화 등등 꽃 자체의 효능도 입소문을 타다 보니, 꽃차 카페도 우후죽순 늘어나는 중이다. 

“중국에는 녹차, 일본에는 말차, 한국에는 꽃차라고들 하죠. 공방이나 문화센터, 방과후 수업에서 꽃차 만들기나 꽃차 젤리 클래스가 인기고요, 2년째 매주 열고 있는 메타버스 꽃차 수업도 MZ세대 수천 명이 함께 했죠. 시각적인 게 중요하고 탄생화, 꽃말 등에 열광하는 젊은 세대들을 보면서, 교단에서 청년교화 할 때 꽃차를 테마로 해도 좋겠다 생각했어요.”

그 역시도 사축이재며 교도들의 경사, 대구경북교구 여성회 일일찻집에 기꺼이 찻자리 봉사를 하고 있다. 화사하며 이야깃거리 많은 그의 찻자리는, 처음 온 사람들도 자연스레 어우러지는 교화 자리이기도 하다.
 

마음공부와 감사생활로 향기 더하고파
경주여중 시절 학교 앞 경주교당 시화전으로 원불교를 알게 된 이복희 교도. 고등학교 때 선배들이 원불교 홍보를 하자 그 길로 원불교로 달려갔다. 고3 때 어찌나 열심히 했는지 아버지가 “니 대학갈래 교당갈래?”했다는데, 당찬 여고생의 대답은 이랬다. “그냥 둘 다 하면 안 돼요?”

대구 수성대 식품영양학과에 진학하자 가까이 삼덕교당이 있었고, 취직한 회사는 심지어 옆 건물이었다. 그에게 교당은 또 다른 집이었다. 몸이 아플 때면 사무실에 있다가도 교당으로 달려갔다. 그러면 이현덕 교무가 그의 얼굴을 살피고는 “어서 아랫목에 누워 자라”고 했을 정도. 결혼하면서 잠시 ‘농띠(?)’를 부리기도 했지만, 15년 전 집에서 가장 가까운 경산교당으로 왔다. 홍은용 교무를 비롯한 교도들은 참으로 정답고 지혜로워 그의 공방에서 찻자리이자 꽃자리가 자주 열린다. 

“원망생활을 감사생활로 돌리자는 말을 늘 되새깁니다. 꽃차로 행복을 전하고 싶은데, 행복이란 게 감사로부터 나오는 것이더라고요. 꽃차가 꽃을 다시 피우며 더 깊은 향기를 내듯, 저도 마음공부와 감사생활로 더 향기로운 신앙인이 되고 싶어요. 어디든 꽃차가 필요한 교단의 자리가 있다면 기꺼이 달려가고 싶고요.”

80가지가 넘는다는 행보키의 꽃차들. 꽃차에서는 이름나고 비싼 장미뿐 아니라, 흔하디흔한 들꽃도 다 주인공이 된다. 무엇이 더 나은 것이 아니라 그저 다를 뿐. 누구나 소중하고도 평등한, 꽃차의 세계다. 

꽃차마이스터 행보키 이복희 교도는 오늘도 한 잔의 꽃차를 건네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한때 어떤 꽃이었다. 누구도 꽃이지 않았던 적 없었다. 우리는 여전히 꽃이다.’
 

[2023년 7월 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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