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총부 정문에서의 시위가 10여 일을 넘기고 있다.
분당교당의 갈등이 두세 해가 넘어가는데도 해결점을 찾지 못하면서 그 화살이 총부로 향하고 있다. 교정원 당국 역시 여러 차례 접촉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태만 점점 키워가는 양상이다. 그로 인해 신앙의 중심체가 되어야 할 중앙총부의 기능마저 심각히 훼손되고 있다.

하지만 분당교당 건이 어떤 경로를 밟고 있는지, 사건의 흐름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에 대한 내용은 깜깜이다. ‘기다려보자’, ‘좀 더 지켜보자’는 신중론은 방관이 되어, 사태를 더 키우지 않을까 걱정이다. 교단 정서상 재가출가 교도간의 갈등을 따지거나 확대하지 않으려는 게 불문율처럼 여겨져 왔다. 그러다 보니 시시비비가 애매해지고 소문만 무성히 떠다니면서, 진실보다는 부분적 사실이 더 힘을 얻기도 한다.

물론 교정원은 억울할 수 있다. 이런저런 수습책이 잘 먹혀들지 않고, 공권력을 가진 것도 아니기에 해결책이 어느 집단보다 지지부진할 수 있어서다. 여러 차례 협의과정이 있었지만 이해당사자간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아 합의를 이끌어 내는데 어려움이 있다고도 호소한다. 특히 ‘교도’란 명칭에 실린 무게감에는 형언할 수 없는 난처함이 존재한다. 그래서 종교에서 갈등조정자는 늘 욕먹는 역할이니 누구나 주저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방관이 수습책이 될 수는 없다.

이보다 더 시급한 것은 사건의 전말과 경과를 소상히 밝히는 것이다. 오히려 수습책은 그 이후일 수 있다. 왜냐하면, 교단 구성원들은 사실 관계가 분명하지 않은 깜깜이 소식에 의지함으로써 회의감에 사로잡혀 상처 받고,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또 다시 교단 불신을 키우기 때문이다.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대한 공식적인 언급이 전무한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병은 알려야 고칠 수 있다 했다.

시대가 다변화됐다. 누구나 자기주장을 섣불리 굽히려 하지 않는 시대다. 그러기에 교단은 여러 가지 사안에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는 대책위원회를 꾸려 문제를 풀어갈 필요가 있다. 이 사건만 해도 교정원과 교구, 그리고 이해당사자와 관련된 조정자, 제3자가 포함된 위원회를 꾸려 사건의 진실을 명명백백히 밝힘과 동시에 지혜로운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책임도 명확히 해야 한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풀리지 않는 매듭은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작은 개미구멍을 방치함으로써 둑이 무너지는 일이 발생할 수 있음을 새겨야 한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은 없다. 그 믿음을 흔들리지 않도록 돕는 게 종교의 생명이다. 그러려면 모든 문제는 진리적이고 사실적으로 규명되어야 한다. 그걸 받치는 게 기강과 규율, 곧 법규다. 법규가 흐트러지면 교단을 위해 일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금은 내우외환의 위기다.

[2023년 7월 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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