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 경기인천교구여성회장
이현덕 경기인천교구여성회장

[원불교신문=이현천 기자] 4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그는 편찮은 어머니 대신 가정과 동생을 돌보며 자랐다. 그렇대도 늘 가족의 소중함을 알고 감사하며 살았다. “어릴 때부터 그런 기질(감사할 줄 아는 성격)이 있었던 모양이에요”라고 말하며 환히 웃는 이현덕 경기인천교구여성회장(북인천교당).

하지만 감사를 찾고 느낄 줄 알아도 경계는 다시 또 찾아왔다. 어머니에 이어 남편에게도 병마가 찾아온 것이다. 다행히 직장과 주변에서는 그를 위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고, 그덕에 남편을 아쉬움 없이 보낼 수 있었다. 아이들과 생활을 꾸려갈 때는 원망 아닌 원망이 있기도 했다. 한동안 그렇게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슬픈 것도, 기쁜 것도 아닌 무의미한 상태로 생활을 이어갔다.

그때 그에게 ‘은혜결연사업’(한겨레중고등학교 학생과 은부모 결연)이 다가왔다. 당시 경인교구여성회 총무로 결연사업을 진행하고 있던 단장이 그에게 협조를 부탁한 것이다. “단장님이 ‘현덕 씨 결연전화만 좀 해줘. 나머지는 내가 할게’라면서 부탁을 했어요. ‘1명만 아직 안 됐어’라고 하면서요.” 당시 경기인천교구의 은혜결연사업은 매년 30~40여 명의 학생과 은부모들이 결연을 맺던 전성기였다. 이 여성회장은 도움을 결심하고 학생을 만났다. 그리고 그의 무의미한 삶에 ‘행복(결연학생 이름)’으로 찾아온 아이는 그에게 다시 일어설 힘이 됐다.

이 여성회장은 “어렸을 때부터 가졌던 ‘감사’를 다시 깨닫게 만들어준 존재”라고 말했다. “대한민국에 연고도 없이 온 사람들이 어려움을 이겨내고 성공한 사례들을 봤어요. 그때 ‘저렇게 힘든 아이들도 대한민국에서 일어서려고 열심히 하는데 나는 집도, 형제도, 친구도 다 있잖아’ 생각하니 일어설 수 있게 되더라고요.”

결연사업은 그에게 다시 일어설 동기가 됐다. “쉼 없이 활동할 수 있게 해준 사은님과 결연학생, 탈북민들에게 감사해요.”

이제 그는 더 큰 서원을 품는다. 교구 여성회장을 맡을 때도 ‘교단일’에 합력하고 싶은 마음으로 수용했고, 기왕 받아들였다면 잘 이끌어 가고 싶다는 발심도 세웠다. “학교를 졸업한 탈북 아이들은 사실 사회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해요. 그런 아이들까지 길게 지원해줄 수 있는 장학사업을 펼치려고 해요”라며 설렘 가득한 미소를 보이는 그. 마지막으로 나지막이 자신의 꿈을 전한다.

“교단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기간제 교무’로까지 자랐어요. 꼭 이룰 수 있도록 마음을 모아보려고요.”

[2023년 7월 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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