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장지해 기자] 농업은 세상이 먹고 살게 만드는 일이다. 그래서 가장 가치 있어야 할 일이고, 가장 가치 있는 일 중 하나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농업은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 직업으로 환영받지 못하는 일이 됐다.

세상 어느 노동이 힘들지 않겠냐마는, 농사는 특히 육체 노동이 필수 아니던가. 게다가 농사는 농작물의 생육 스케줄과 계절을 온전히 따라야 하기 때문에 개인 시간을 갖기가 어렵다. 농번기·농한기가 있다고는 해도 그건 일의 양이 더하고 덜하고의 차이일 뿐, 1년 365일 내내 사람 손도 타야 한다. 때마다의 시기를 놓치면 안 되고, 날씨의 영향도 많이 받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농업을 생업(또는 직업)으로 쉬이 선택하지 못한다.

하지만 일찌감치 기꺼이, 이 귀한 일을 업으로 삼은 이가 있다. ‘양하 파파’ 정승우 청년 농부(김제교당)도 그러한 이 중 하나다. 그는 자신이 키우는 농작물 ‘양하’에 대한 ‘찐 사랑’으로 모든 것을 극복한다.
 

농업을 생업으로
정 청년 농부는 자신을 “잠도 많은 편이고, 어떻게 보면 게으른 사람에 더 가깝다”고 표현했다. 그런데 농부다. 의아해하는 표정을 알아차린 그가 이어 말한다. “그런데 농사에 있어서는, 그게 예외가 돼요. 관심 있는 일이니까 그게 게으름을 이기는 것 같아요.”

굳이 계기를 되짚어 보자면, 어머니의 말이 주요했다. 스무 살짜리 아들에게 어머니는 어느 날 매우 진지하게 농업의 가치와 농부로 사는 삶의 가치를 이야기했다. 그 대화 이후였을 것이다. 통학버스를 타고 다니며 무심히 보았던 창밖의 논과 밭 풍경이 달라 보이기 시작한 것은.

초록색으로 펼쳐진 논과 밭 풍경이 바다인 듯 멋있게 느껴지던 순간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때 불쑥 ‘농업이 정말 매력적인 일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원광대학교 한국문화학과를 다니던 그는 농부의 삶을 차곡차곡 준비하고자 경영학과로 전과를 하고, 원예학과를 복수전공했다. 그리고 작은 텃밭을 임대해 이것저것 농작물을 키워보기 시작했다. 가짓수만 해도 특용작물까지 30여 종에 이른다.

만만하게 생각지 않았지만, 농사는 막상 너무 어려웠다.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하지만 왜인지 못하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내가 아직 모르는 거지, 할 수 없는 건 아니겠다. 배워서 더 잘 하고 싶다.’ 그 마음뿐이었다.
 

농업 가치 설명해준 어머니 영향으로 들어선 농부의 길
어릴 적 즐겨먹던 가장 좋아하는 농산물 ‘양하’ 선택
모든 일의 전제 ‘건강하고 행복하게’ …

건강한 농부의 건강한 농산물

양하 파파(papa) 정승우
대학 졸업 후 그는 ‘나는 ○○○을 재배하는 농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의 빈칸을 채우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 그렇게 자신만의 고유성을 가지면서도 자신이 가장 잘 기를 수 있는 작물을 떠올리던 그는, 어릴 적 가을이면 시골집 마당에서 따먹던 양하를 떠올렸다. 좋아하는 작물이니 잘 기를 수 있을 것 같았고, 양하를 전문적으로 키우는 농가가 많지 않다는 것도 그의 도전심을 자극했다. 그렇게 본격 ‘양하 파파’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양하는 생강과에 속하는 채소로, 줄기와 잎 모양이 생강과 비슷하며 ‘야생강’이라고도 불리는 작물이다. 뿌리에서 올라오는 꽃봉오리를 채취해 식용으로 쓰는데, 맛과 향이 독특해 고기·생선요리에 활용하면 잡내를 제거하고 음식의 맛을 돋운다.

많이 알려졌다고는 해도, 양하는 여전히 생소한 농작물이다. 실제 생산하는 농가 수도 적어서 그는 본의 아니게 학구열을 불태워가며 노력을 많이 했다. 또 그는 양하를 100% 인터넷으로만 판매하는데, 알고 보면 양하의 인터넷 시장 문을 처음 연 것 역시 그다. 당시 그가 올린 판매가는 지금까지 인터넷 양하 거래가의 기준도 된다. 그야말로 대한민국 양하의 기준이자 표준을 만들어가는 셈이다.
 

양하는 보랏빛 꽃봉오리를 채취해 식용으로 쓴다.
양하는 보랏빛 꽃봉오리를 채취해 식용으로 쓴다.
양하는 보랏빛 꽃봉오리를 채취해 식용으로 쓴다.
양하는 보랏빛 꽃봉오리를 채취해 식용으로 쓴다.

그의 양하 농장은 현재 하우스 세 동(약 600평)과 노지(400평)까지 총 1천여 평에 달한다. 2014년 인터넷 최초 판매 시 1년에 30kg도 못 팔았던 양하를, 그는 지난해에 1톤 넘게 판매했다. 10년여 새 양하의 인지도가 올라간 것과 더불어, 청년 농부라는 그만의 아이텐티티가 소비자들에게 잘 다가간 덕분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사실 그는 몸짱 농부로도 유명하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농사를 잘 지으려다 보니 체력과 건강 관리가 중요함을 알게 됐고, 농사와 운동을 병행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고 했다. 그는 “‘건강한 사람이 행복하게 키운 작물은 더 건강하고 맛있을 것’ 이라는 기대감까지 선물하는 농부가 됐다”며 웃었다.

그의 나이 이제 서른셋. 농업인으로서 남보다 조금 빠르게 시작한 덕분에, 그는 양하 재배 기술에 있어 전국 톱(Top)으로 꼽힌다. 건강한 작물을 키우는 건강한 농부라는 자부심도 높은 그는, 그냥 천생 농부다.

은혜로운 법신불 사은이시여!
그는 김제에서 나고 자란, 김제 토박이다. 다시 말하면 시골에서의 삶이 익숙하고 친근하며, 자랑스럽다. 흙과 작물을 끊임없이 만지고, 땅을 밟고, 하늘을 매일 바라봐야 하는 일. 농부로 살아가게 된 이후의 그에게 ‘법신불 사은’은 더욱 직접적인 은혜가 됐다. 원광어린이집, 김제교당 어린이회·학생회 출신이기도 한 그는 “이제야 ‘은혜로우신 법신불 사은님’을 제대로 느끼게 됐다”고 고백했다.

농사를 지을 때 천지의 도움이 없으면 막막할 것이요, 아버지와 어머니(김제교당 정명원·나효선 교도)가 없었다면 이 길에 들어설 수도, 버틸 수도 없었을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김제에서 함께 농사를 짓는 젊은 청년 농업인들의 모임(4H)를 통해서는 동포은을 실감한다. 정보도 얻고 기계도 빌리고, 유사시 손발도 되어주니 농사를 짓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힘이다. 또 그는 청년 농부들을 위한 각종 제도(청년창업농 지원제도, 농업후계자 산업복무요원 대체 복무 제도 등)을 통해 법률의 은혜도 많이 받았다. 필요한 순간 딱 절묘하게 주어지는 순간순간의 은혜가, 그는 ‘내가 잘나서가 아니’고 ‘사은님의 은혜임’을 저절로 알아가는 중이다.

“수확할 때가 되면 힘들다는 생각보다, 기쁜 마음이 먼저 들어요. 잘 자라준 양하들에게 고맙고요.” 가을이 되면 그의 1천 평 땅 위로 보랏빛 양하 꽃봉오리가 고개를 내밀 터다. 봉오리 하나하나에 ‘사은의 은혜’를 가득 품고서.
 

7월 21일 KBS 아침마당 녹화.
7월 21일 KBS 아침마당 녹화.

*정승우 청년 농부 인스타그램 @yangha_papa

[2023년 7월 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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