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오성 교무
장오성 교무

[원불교신문=장오성 교무] 사람들이 본의를 완전 잘못 알고 쓰는 대표적인 법문이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다. 천상천하에 내가 제일 높은 존재라느니, 나 외에는 모두가 아랫사람이라느니, 나 같은 사람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존재라느니 하는 의미들로 잘못 해석되어 쓰이고 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입장에서는 안타깝고 억울할 법하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은 천상천하에 오직 나 홀로 높다는 말이다. 그럼 남들은 싹 다 낮은 존재고 너만 홀로 높다고? 자, 그런 뜻이 아니니 호흡을 좀 가다듬고 들어보시라. 

깨달은 이의 안목에서는 정확히 나는 천상천하에 가득하다. 천상천하에 오직 나밖에 없고 나 아닌 것이 없다. 게다가 그 나는 하찮은 나가 아니라 존귀한 신, 부처, 하나님, 위대한 존재라는 뜻이다. 그게 바로 그대이기도 하다.

천상천하 일체가 오직 나며, 그 하나인 나는 만능·만지·만덕을 갖추고 있어 존귀하고 위대하다. 일체 우주만물이 또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다. 온 천상천하에 나 아닌 것이 없으니 티끌 하나도 유아독존에서 제외되는 것이 없다. 나는 전체에 가득히 존재한다. 내가 곧 하늘이고 신이고 법신불이고 부처이고 일원이다. 나 외에 아무 것도 없이 오직 나만 홀로 있다. 그 나는 전지전능의 위대한 존재, 일원, 유일신, 독생자, 독로, 독존이며 일체 우주만물이 또한 그러하다. 그러니 나 외에 다른 신을 믿어서는 안된다. 

천상천하는 곧 시방삼계다. 시방삼계 육도사생의 전 생명이 나의 생명이요 전체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다. 천상천하 육도사생이 곧 내 몸이니 전체행복이 나의 행복이며, 전체가 잘 되는 것이 내가 잘되는 것이다. 나는 시방삼계 천상천하에 가득히 있는 하나의 몸이며 그 나는 육도사생과 하나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자리를 벗어나지 않고 사는 이는 일체만물을 아끼지 않을 수 없는 동체대비심이 흘러나온다.
 

천상천하에 일원인
나 하나밖에 없는데,
나를 괴롭게 할 누가
따로 있단 말인가.

남에게 하는 모든 것은 그 하나인 자리에서 나에게 하는 것이다. 일체에 대한 사랑과 불공은 유아독존인 그 나에게 하는 것이다. 남을 사랑하는 것은 나를 사랑하는 것이며 남을 미워하는 것은 나를 미워하는 것이다. 남에게 잘하는 것이 곧 내게 잘하는 것이다. 

온 우주 천상천하가 훤히 다 보고 다 아는 진리의 눈인데 부처님 손바닥 안에서 아무도 모르게(?) 부당한 이득을 취해 보겠다고 온갖 용을 쓰는 자들이 참으로 가련하고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사는 이는 불안과 고통이 없다. 누구의 무엇 때문에 사네 못 사네 할 일이 없다. 오직 천상천하에 일원인 나 하나밖에 없는데 나를 괴롭게 할 누가 따로 있단 말인가. 그저 허허허 웃음만 나오지!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자리에 머물면 죽음에 대한 공포마저 없다. 온 우주에 나밖에 없는데 어디로 갈 수가 있는가. 오고 갈 곳이 없으니 생과 사가 둘이 아닌 생사일여다. 가득히 있는 존귀한 나는 죽고 사는 존재가 아니라 여래여거다.

천상천하 나밖에 없는 그 나를 보았다면 일체의 작용이 나의 움직임이요 천지의 모든 일이 내가 하는 일임을 안다. 내가 비를 내리고 내가 꽃을 피우며 내가 밤낮을 돌리고 내가 만물을 운영한다. 나는 만물인 동시에 만물의 운영자, 천상천하 가득한 하나의 법신불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상태에 머물러 만끽해보라. 이 얼마나 홀가분하고 자유로운가!

/변산원광선원

[2023년 7월 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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