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지키며 ‘함께 살아내고자’ 했던 마음에서 시작
‘숲을 시민들에게 제공하자’는 제의에 열린 비경의 문
“선한 마음에서 비롯된 일, 세상에 널리 퍼지길 바라”

[원불교신문=이현천 기자] 1970년대 모두가 어렵던 시절, 한 신부가 길 위에서 삶을 마치는 사람들을 보고 “나라도 이분들과 함께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오갈 곳 없는 노인들을 모아 보살피기 시작했다. ‘가난을 사랑했던’ 故 서정수 (알렉시오) 신부의 한마음에서 시작된 익산의 ‘아가페정양원’은 그때부터 오랜 시간에 걸쳐 그 사랑을 이어왔다. 그리고 2021년,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익산시민을 위해 아가페정양원은 새로운 사랑의 문을 활짝 열었다.
 

생명을 위하는 마음에서부터
아가페정양원이 유명해진 이유는 바로 ‘정원’ 때문이다. 아가페정양원의 정원은 정양원의 자급자족을 위해 서 신부가 고민한 결과다. 후원자의 도움으로 집과 땅은 마련했지만, 먹고 살 방법을 찾아야 했던 그는 처음에는 농사를 지었다. 하지만 일할 사람은 적고 일은 많으니 포도를 심어 출하하기로 했다. 그러나 출하 직전, ‘포도는 출하할 때 약을 해야 무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서 신부는 “사람이 바로 내일모레 먹을 텐데 어떻게 약을 치겠냐”면서 “이는 간접살인”이라고 규정하고 포도나무를 모두 정리해버렸다. 그렇게 생명을 위하는 마음을 놓지 않고 방도를 찾은 결과가 바로 ‘나무’였다.

그는 작은 나무들을 사서 넓은 땅 이곳저곳에 심고 키우기 시작했다. 단풍나무를 키워 내장산에 팔기도 하면서 아가페정양원의 운영을 이어간 것이다.

그렇게 더러는 팔고, 더러는 남겨둔 나무들이 50년 동안 자라며 숲을 이뤘다. 아가페정양원의 치유정원으로, 지역의 숨겨진 비경으로 알려진 아가페정원의 시작이다.

50년간 숨었던 비경, 시민에게로
코로나19가 극성을 부리던 2021년, 장마 피해를 입은 지역을 둘러보러 나온 익산시장이 아가페정원의 우거진 나무를 보고 찾아왔다. 최명옥 (도미니카) 전 아가페정양원장은 “잊히지도 않아요. 그때 익산시장님이 오더니 ‘숲을 익산시민과 공유하자’더라고요. 그전에도 문을 잠그진 않았었는데, 시장님이 ‘공개적으로 오픈해서 길도 내고, 화장실·주차장도 해줄 테니까 코로나19로 지친 시민들이 힐링할 장소를 만들자’고 했어요.” 

하지만 당시 그는 갑작스러운 제의에 쉽게 응하지 못했다. 최 전 원장은 “한다 안한다를 몇 번을 반복했어요. 그런데 그때마다 시장님이 끈질기게 설득했고, 덕분에 지금의 아가페정원이 탄생했죠”라며 오픈 배경을 설명했다.

드디어 2021년 9월, 50년간 숨었던 비경이 일반대중을 향해 활짝 열렸다. 정양원처럼 역시 ‘무료’로. 최 전 원장은 “입장료를 받아도 된다는 의견도 있었어요. 하지만 정양원처럼, 신부님이 나무를 우거지게 해두신 것 역시 시민들에게는 ‘복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있었죠. 그리고 시민들이 어려울 때 문을 열었기 때문에 서로 건강을 챙기며 한 사람이라도 여기서 잘 회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어요”라고 말했다.
 

푸르름으로 전하는 회복과 치유
서 신부의 ‘사랑’을 잇는 후인들이 조성한 정원은 말 그대로 ‘대박’을 쳤다. 실내 활동과 다인 모임이 금지됐던 그때, 치유의 숲 아가페정원을 찾는 인원이 하루에만 2,500명을 넘었다. 주차장이 부족해 오후에는 입구를 닫아야 했을 정도였다고. 최 전 원장의 안내를 따라 정원을 둘러보았더니 말 그대로 ‘평지에 조성된 숲’이 포근한 안정감을 선사했다.

3만5천여 평에 이르는 부지에는 정양 시설을 제외한 모든 곳이 나무와 화초로 가득하다. 입구에서부터 방문객을 맞아주는 고려 영산홍 터널은 ‘내가 숲으로 들어간다’는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하다. 이후 안으로 들어갈수록 마주치는 소나무 숲, 가문비나무, 유럽식 정원(Formal Garden)까지 구역마다 가득한 나무와 화초들은 푸르른 생기를 머금고 방문객에 활기를 전한다. 

그러다 마침내 마주한 메타세쿼이아 숲, 사람 키보다 작거나 사람의 키만한 나무들과 호흡을 나눈 후 만나는 메타세쿼이아 숲은 그야말로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라 입이 떡 벌어진다. 자연의 위대함과 압도감까지도 느껴진다. 초기에 농장의 울타리 역할을 했었던 메타세쿼이아들은 이제 울타리 그 이상의 역할을 해낸다. 주변의 건물과 나무보다 훨씬 크고, 울창하게 우뚝 솟은 이 숲은 아가페정원이 수많은 방문객에 치유와 회복의 숲으로 알려지게 한 1등 공신이자 ‘시그니처’다.

매일 아가페정원을 찾는다는 한 방문객은 “정원을 1년 정도 찾았더니 몸도 마음도 달라졌다. 이런 좋은 숲(정원)을 무료로 열어줘서 고맙다”는 소감을 전했다. 
 

“선한 마음 널리 퍼지길”
현재 아가페정원은 올해 정양원장을 퇴임한 최 전 원장이 전담해 관리한다. “넓은 정원을 관리하다 보면 괜히 시작했나 싶기도 하지만, 정원이 변하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습 때문에 놓을 수 없어요.” 최 전 원장은 나무의 지혜와 이야기를 전하는 정원지기이자 일꾼으로, 또 방문객의 인생샷을 찍어주는 사진사로 숨돌릴 틈 없는 날을 보내고  있다.
“자연은 의사가 못하는 치료를 할 수도 있어요. 누구든 우리 정원을 보러 와서 ‘이런 선한 마음으로 만든 정원도 있구나’ 하며 포근하고 선한 마음, 사랑의 마음을 안고 돌아가 주변에 전하길 바라요.” 그의 말에 담긴 마음이 여름 햇살만큼이나 쨍하고 뜨겁게 남는다.
 

[2023년 7월 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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