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년, 소태산 대종사 석굴에서 선정에 들다

선정에 들었던 영광 길룡리 귀영바위 굴.
선정에 들었던 영광 길룡리 귀영바위 굴.

소태산 대종사는 열아홉 살 될 무렵, 이제 산신도 도사도 아닌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했으나 부친이 열반하여 독공 계획이 무위로 돌아갔다. 부친이 열반하자 지금까지의 생활에 대한 의뢰와 구도에 대한 후원을 잃게 되었고, 모친과 처자의 생활 책임을 전담하여야 하고 부친이 생전에 영광 읍내 부자에게 빚을 진 채무독촉을 받았다. 그리하여 농사일로 동네 사람들과 의논도 하고, 집안일로 여러 곳에 출입하기 시작했으나 뜻과 같이 되지 않았다.

소태산 대종사는 귀영바위 옆에 오두막을 얻고 주막을 차려 운영하였으나 장사는 아예 이원화(李願華)에게 맡겨놓고 집 옆 귀영바위 굴에서 한나절도 좋고 시도 때도 없이 우두커니 앉아 있기가 일쑤였다. 채무독촉이 심해지자 신안군 임자면에서 열리는 탈이파시 장사를 다녀와 다행히 채무를 청산하였다.

소태산 대종사는 다시 구도에 전념하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저녁부터 아침까지 이 일을 어찌할꼬?’ 하는 한 생각뿐이었다. 부친이 지어 주었던 삼밭재 초막(草幕)에 가서 앉아 있기도 하고, 귀영바위 굴에 앉아 있기도 하였다. 이때 주문(呪文)이 떠올라 밤낮으로 외웠으나 주문도 일시적이었을 뿐 대체로 이 일을 어찌할꼬?’라고 하며 앉아 있을 때가 많았고 후에는 그것마저 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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