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이여원 기자] 뜨거워도 너무 뜨거운 날들의 연속이다. 한여름 햇살 온몸으로 받아내는 유정물들이 이토록 애달픈 적이 있었던가. 경남 하동 악양면으로 향하는 길, 묵직하고 무심한 마음이 한 무리의 꽃나무에 화들짝 깨어난다. 그래 이맘때였다. 여름 초목들 사이에서 붉은 등 밝히는 배롱나무꽃. 지쳐있지 말라고, 누구라도 잠깐 이 더위 잊으라고 건네는 위안이 된다. 

오래전 한 권의 책을 선물 받고, 책 속에 받는 이 이름 석자 정갈하게 새겨진 엽서를 꺼내 책상 한켠 꽂아주었다. 그 출판사가 있는 시골 마을 어디마다 피어있는 배롱나무꽃에 마음 주며 닿은 곳, 상추쌈출판사에서 젊은 부부(전광진 대표·서혜영 편집장)을 만났다. 

상추쌈을 먹을 때의 평화
책 이야기에 앞서 궁금했던 질문이 앞섰다. 왜 ‘상추쌈’출판사일까. “너무 우연히 지은 이름이에요.” 같은 출판사에서 일했던 이들, 평화그림책 시리즈를 런칭하며 제목을 모니터링 했던 이는 서 편집장이다. 

“제목 모니터를 전사적으로 할 때였는데(웃음), ‘평화와 상추쌈’이라고 적혀있는 제목이 궁금했어요.” 당사자에게 이유를 물은 즉, “상추쌈을 먹을 때가 가장 평화롭다”고 대답했다고. 당사자가 지금의 남편인 전 대표다. 

“상추쌈을 먹을 때, 세상에 그것만한 평화가 없죠.” 전 대표의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하니, 두 부부가 운영하는 출판사가 ‘상추쌈’이 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닐터.
 

상추쌈이 내놓은 책 이야기
첫 책에 관한 이야기다. 촉망받던 서울대 법대생(저자 윤철호)은 혼자 힘으로 100미터 걷기가 힘겨웠다. 병원 어느 곳에서도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었다. 그 20대 청년은 책상 앞에 한 시간 동안 앉아 있을 수 있는 체력을 회복한 뒤, 온갖 건강 서적과 사이트를 뒤지며 건강을 되찾기 위해 골몰했다. 

삶을 기약할 수 없는 사람이었기에 스스로 자신을 돌보는 일은 지극했다. 그렇게 수십 년 투병 경험에 기대, 건강에 관한 한 ‘원리를 이루는 뿌리부터, 아주 세세한 가지까지’ 거의 모든 것을 다루고 있다. 첫 책이 된 <스스로 몸을 돌보다>의 내용이다.

“의대 교수가 아닌데 이렇게까지 정리하고 통찰했나 싶었어요. 책 내용을 실제로 검증해보기도 했죠. 그렇게 3년을 붙잡고 있던 책이에요.” 서 편집장의 설명이다. 저자만큼, 어쩌면 더한 공을 들이느라 상추쌈이 내놓는 책은 일 년에 한 권, 많으면 두 권이다.
 

상추쌈출판사는 작은 시골 마을에 있습니다.
세 아이와 함께 농사를 지으며, 책을 펴냅니다.
식의주와 교육, 건강, 생태를 깊이있게 다루고자 합니다.

상추쌈의 ‘즐거움’과 ‘공공성’
“돈을 바라고 내는 책이 아니다”라는 말, “의미가 있고 책 읽는 일이 즐거워야 한다”는 말이 출판업계에서 통용될까. 이 부부의 모토가 이렇단다. 
여기에 더해 ‘사회적으로 공공성이 있는지’의 판단을 끊임없이 한다. 그렇게, 부부는 한 권 한 권 책을 낼 때마다 엄격하게 서로를 단도리한다. 상추쌈출판사에서 펴낸 책 이야기가 한동안 이어졌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 호류지(법륭사)를 지켜온 마지막 대목장의 이야기를 담은 책 <나무에게 배운다>는 사람의 싹을 발견하고 그것을 기르는 일이 어떠한 것인지를 들여다볼 수 있다. 깊은 고요 속에서, 나날이 더 깊은 삶을 살았던 야마오 산세이의 시집 <나는 숲으로 물러난다>는 ‘지고 물러난 것들로부터 오는 불가사의한 힘’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상추쌈의 키워드 ‘생태’와 ‘교육’
“참된 문명은 산을 황폐하게 하지 않고, 강을 더럽히지 않고, 마을을 부수지 않고, 사람을 죽이지 아니한다.” 다나카 쇼조의 삶과 사상을 알리는 <참된 문명은 사람을 죽이지 아니하고>는 박맹수 원광대학교 전 총장과의 깊은 인연으로 출판된 책이다. 

뻔하지도, 두렵지도, 우울하지도 않은 에너지 이야기 <잘가, 석유시대>, 진정한 대안은 자연으로 더 ‘나아가는’ 것임을 보여주는 <문명을 지키는 마지막 성벽 위에서>, 교육과 지역, 자연과 마을에 대한 고민을 온몸으로 종횡무진 넘나드는 아이들의 <꿀벌과 시작한 열입곱>, 한 마디 한 마디 제대로 살려 쓴 동넷말(사투리) 덕분에 갓 뜯은 봄나물처럼 파들파들한 글귀가 가득한 <언젠가 새촙던 봄날> 등. 결국, 상추쌈출판사가 펴내는 이 귀한 책들은 ‘생태’와 ‘교육’이라는 결에 닿아 있다.

상추쌈을 가꾸는 부부의 삶
쌀농사도 짓고, 밀농사도 한다. 밭이 있어야 해서 ‘빚을 크게 쾌척’해 밭도 샀다. 그 밭 한 도가리(블록)에는 모과, 복숭아, 사과, 아로니아, 자두, 키위, 감 등 그때그때 먹을 과실을 심는다. 또 한 도가리에는 마늘, 양파, 감자도 심는다. 그야말로, 철마다 세 아이와 먹을 만큼의 ‘온갖 것’을 다 심는다. 한 권 한 권 깐깐하게 펴내는 출판업으로는 먹고사는 일이 녹록지 않을 터, 자급과 자립의 터전에서 땀 흘려 일하며 떳떳하게 가꿔온 것들로 먹고 산다. 

쌓인 돈은 없지만 아이들은 자신들의 삶이 가난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지금이 좋아요.” 세 아이와 함께 농사지으며 책을 펴내는 상추쌈의 평화는 늘, 지금처럼, 계속될 것이다.
 

 

[2023년 8월 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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