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3년, 정산 송규 거북바위에서 기도 올리다

기도 올렸던 성주 박실마을 거북바위
기도 올렸던 성주 박실마을 거북바위

정산 송규 종사는 9세경에 <통감(通鑑)>을 배운 후, 11세 무렵 <사서(四書)>를 공부하다가 천하 창생을 널리 구제하고 세상을 평화롭게 건설하리라.’라고 생각하였다. 이때부터 정산종사는 마음속에 큰 스승 만나기를 염원하였다.

소야마을로 이사한 정산종사는 13세 되던 해 봄, 여청운(呂淸雲, 중타원)과 결혼하였으나 구도에 대한 정열만 더욱 뜨거워갔다. 다시 박실마을로 이사하여 집 뒤뜰에 있는 거북 모양의 바위 앞에서 천하 창생을 제도하는 큰 사업을 이루고자 천지신명께 간절히 기도하였다.

거북바위에서 상당 기간 기도를 계속한 후 집 방안에 천문도(天文圖)와 지도서(地圖書)를 그려놓고 하늘 기운과 땅 기운이 응하기를 비는가 하면 성현군자와 영웅달사들의 명패(名牌)를 모시고 축원 기도도 올렸다.

정산종사는 거북바위와 집에서 정성스러운 기도를 올렸으나 답답한 마음은 풀리지 않았다. 이 무렵 여 처사(呂處士)란 분이 가야산에서 십수 년간 수도한 도인이란 말을 듣고, 집에서 1백여 리 떨어진 가야산을 세 번이나 찾아갔다. 그러나 여 처사는 만나지 못하고 도꾼들을 만나 큰 공부를 이루기 위해서는 전라도로 가야 한다.’라는 말을 들었다. 정산종사는 부모님께 큰 스승을 만나기 위해 전라도로 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때가 18세 무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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