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장지해 기자] 프랑스의 작은 마을 떼제(Taizé)에는 ‘세계 젊은이들의 영성지’로 유명한 떼제공동체가 있다. 가톨릭, 개신교, 정교회, 루터교, 성공회 등 모든 그리스도 교파를 아우르는 초교파 수도공동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까지 매년 10만 명의 젊은이들이 찾아왔고, 지금도 세계 청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떼제공동체의 유일한 ‘한국인 출신’ 신한열 수사(60) 역시 스물여섯 살일 때 이곳을 찾았다가 오늘에 이르렀다. 3개월만 머물려던 계획이 공동체 생활을 하는 것으로 바뀌고, 종신서원까지…. 그때부터 그는 떼제에서 많은 나라 청년들과 교류하고 그들의 영성과 마음을 살피는 일을 했다.

그런 그가 2020년 한국으로 영구 귀국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확산하던 때,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면 ‘지금’이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힘든 시기를 함께 겪으면서 이후의 길을 찾아 보자’는 각오도 더해진 귀국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데 걸린 시간 32년. 종종 오가긴 했지만, 정착을 위해 적응하며 바라본 한국 사회는 많은 것이 변화돼 있었다. 그렇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한국에서, 신 수사는 자신의 역할을 고민하며 지난해 12월 비영리단체 ‘이음새’를 창단했다. ‘세상 속에 살지만 세상에 종속되지 않는’ 역할로서, 기꺼이 연결자를 자처한 것이다.
 

풍요·윤택·화려한 한국… 순박·소박한 아름다움 연해져 아쉬워
‘얼마나 본질에 충실하고 행복하게 사는가’ 미래세대가 찾는 모델
편 가르기, 진영 논리 , 소수자 차별 외면한 종교는 존재 의미 없어

6월 24일 ‘이음새’ 파주 접경지대 평화순례 모습. 매월 진행되는 이음새 평화순례에는 100여 명이 함께 한다. (사진제공= 이음새)
6월 24일 ‘이음새’ 파주 접경지대 평화순례 모습. 매월 진행되는 이음새 평화순례에는 100여 명이 함께 한다. (사진제공= 이음새)

32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는데요.
“고향이고 언어도 알아듣지만, 낯선 게 있죠. 처음에는 적응하려고 노력하다가 어느 순간 포기했는데(웃음), 어쩌면 영원히 경계인 혹은 이방인으로 살지 않을까 생각해요. 수도자들은 이 세상 속에 살아가면서도 세상에 온전히 속하지 않잖아요. 자본주의 사회에 살아도 자본주의의 모든 걸 받아들이거나 종속되지 않는 것처럼요. 한국 사회가 과거에 비하면 너무나 풍요롭고 윤택하고 화려하고, 때로는 사치스럽기까지 한데, 사회에는 종교 단체나 종교 기관까지도 포함되니까… 종교도 그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순박하고 소박한 아름다움이 연해진 데서 오는 어려움들이 좀 있었어요.”

서른이 되던 해, 그는 떼제공동체 수사로 종신서원을 했다. 출가를 고민하는 누구나 그렇듯 그 역시 ‘1년 후, 10년 후, 또는 더 나이가 들어서도 똑같은 마음일까’ 하는 고민이 물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기꺼이 신뢰의 모험이자 신앙의 모험에 나섬을 결정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믿음과 ‘중요한 건 오늘을 사는 것’이라는 다짐이 더해진 결정이었다.

무엇이 가장 어려웠나요?
“한국 사회가 경제적 발전은 크게 이뤘습니다만, 그러다 보니 여유가 없어서 뒤처지는 사람들을 놓치며 온 것 같아요. 나빠서가 아니라, 바쁘게 살고 효율을 강조하다 보니 장애인, 이주민, 난민 등과 같은 많은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귀 기울일 틈이 없었겠죠.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이렇게 단절된 사회에서 ‘연결하는 일’이 너무나 필요하겠다고 생각해 ‘이음새’를 만들게 됐어요.”

신 수사는 우리 사회의 심각한 ‘진영 논리’에 집중했다. 이에 ‘사회 치유’라는 화두를 찾아 새로운 걸음에 나섰고, 이 걸음에는 교회·교파·나라·세대·문화들 사이에 다리를 놓고 연결하는 일을 어떻게 지속할까 하는 고민도 담았다. 무엇보다 떼제공동체에서 수사로 여러 나라를 오가며 경험한 ‘서로 만나고 연결되고 함께하는 아름다움’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었다.

종교 화해와 일치의 상징이기도 한 떼제공동체가 한국 사회에서 해나갈 역할이 기대됩니다.
“종교마다 고유한 종교 체험, 경전, 의식, 건물이 있으니 다른 점이 당연히 있죠. 하지만 차이점에만 주목하면 같은 교파 사이도 다른 종교처럼 여기게 돼요. 그래서 저는 기본적으로 평화와 조화, 안정을 위해서는 ‘종교 간 공통점’에 조금 더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봐요. 그러다 보면 다리 놓기도 쉬워지지 않을까요.”

신 수사는 ‘우리’라는 말의 양면성에 대해 말을 이었다. “‘우리’는 1인칭 복수로서 모두를 아우르는 의미로는 참 좋은 말이지만, 범위를 한정하는 ‘울타리(울)’이라는 뜻도 돼요.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종교의 역할은 담을 헐고 다리를 놓는 것이어야죠.”

대화를 나누던 중, 그는 프랑스 떼제공동체에서 만난 여러 ‘원불교 사람들’을 회상해냈다. 저녁 기도에 참여한 후 ‘떼제의 노래를 어떻게 하면 구할 수 있냐’고 묻던 교무 몇 사람의 모습도 인상 깊게 남아있다고 말했다. 
 

6월 24일 ‘이음새’ 파주 접경지대 평화순례 모습. 매월 진행되는 이음새 평화순례에는 100여 명이 함께 한다. (사진제공= 이음새)
6월 24일 ‘이음새’ 파주 접경지대 평화순례 모습. 매월 진행되는 이음새 평화순례에는 100여 명이 함께 한다. (사진제공= 이음새)

종교가 젊은 세대에 매력있게 다가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각 종교에 따라 조금 더 새롭게 할 것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저는 딱 두 가지, ‘우리가 얼마나 본질에 충실하게 사는가’와 ‘우리 각자가 얼마나 행복하게 사는가’에 초점이 있다고 봐요. 젊은 세대들은 아마 진심으로 행복하고 평화롭고 기쁘게 사는 모습, 그런 모델을 보고 싶어 하지 않을까요.”

그가 생각하는 본질 중 하나는 ‘우리 시대에 가장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삶’이다. 종교인이라는 이름표를 달기 전 ‘이웃’이자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함께 기도하고 함께 걷거나 서는, 그런 소박한 행위 하나가 사회의 단단한 힘이 된다고 여기는 것. 또 그는 종종 30대 청년들에게 ‘한국에서는 여러분들이 제 선배입니다’ 하고 말한다. 그의 한국 생활 경력은 28년째이니, 웬만한 30대들의 한국 생활 경력에 미치지 못한다는 표현이다. ‘젊은 세대들을 위한 한 마디’를 남겨달라는 요청에 그가 말한다. “60이 된 저는 저대로, 2030 젊은 세대는 그 세대대로 각자가 자기의 체험을 갖고 동시대를 사는 거죠. ‘키워준다’는 말도 때로는 어패가 있고,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를 잘 ‘뒷바라지’ 해야죠.”

미래 시대 종교에 대한 고민도 많습니다.
“기후 위기에서 나아가 기후 재앙까지도 이야기하는 시대에는 종교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게 의미 없다고 생각해요. 세상이 사라지면 종교도 자연히 사라질 테니까요. 지금 이 기후 재앙을 놓친다든가, 한국 사회에서 위험 수위에 다다른 편 가르기와 진영 논리,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을 외면하고 난 이후에 종교가 존재하는 게 무슨 의미 있을까요. 종교가 인류 사회에 얼마나 도움 주고 역할하며, 자기 자신을 초월할 수 있는가가 핵심이어야 한다고 봐요.” 

종교가 나아갈 길에 대한 말씀을 전해주세요.
“엄청난 변화의 시기에 미래 종교의 싹을 저는 ‘종교의 개인성’으로 봐요. 이건 ‘함께 가지 말자’거나 ‘공동체를 도외시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앞으로의 종교는 개인들에게 종교 체험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하고, 그래야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어요. 개개인의 종교 체험은 수도자뿐 아니라 일반 신도들도 해야 하고, 우리 사회를 함께 사는 세상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더욱 필요한 공부예요.”
신 수사는 ‘변화한 개인이 모여 단체도 사회도 바꿔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일상과 수행의 결합’이라고도 표현했다. 
 

그는 자신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교를 표현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자신이 한국에 온 이유에는 ‘서구의 언어와 서구의 관점에서 벗어나, 예수님 제자로서 일반화된 복음’을 전하고픈 뜻도 담겼다고 했다.

“예수님께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하셨는데, 소금은 맛을 내면 녹아 사라져요. 녹지 않고 존재하는 소금은 맛을 주지 못하죠. 종교가 녹지 않는 소금으로만 존재한다면 사회는 변하지 않을 거예요. 종교의 자기 초월은 그런 것 아닐까요.”

결정체로만 존재하는 소금이 될 것인가, 녹아 사라짐으로써 맛을 내는 소금이 될 것인가. 세상 여러 종교에 통할 강한 울림이다.
 

6월 24일 ‘이음새’ 파주 접경지대 평화순례 모습. 매월 진행되는 이음새 평화순례에는 100여 명이 함께 한다. (사진제공= 이음새)
6월 24일 ‘이음새’ 파주 접경지대 평화순례 모습. 매월 진행되는 이음새 평화순례에는 100여 명이 함께 한다. (사진제공= 이음새)

[2023년 8월 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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