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오성 교무
장오성 교무

[원불교신문=장오성 교무] ‘농부거든 농사하며 노는 입에 아미타불, 직녀거든 길쌈하며 노는 입에 아미타불’, 고려 나옹화상은 누구나 언제나 노는 입은 염불하라 했다. 몸으로는 일하면서 입으로는 나무아미타불을 염송해서 극락 생활할 수 있는 초간단 수행법이 염불이다. 저녁 시간에 목탁 치며 소리 내 하는 것만 염불이 아니라 언제든 소리 없이 속으로만 해도 공덕은 같다.

나무아미타불은 아미타불, 자성자리에 돌아가 의지한다, 진리에 모든 것을 내맡긴다는 의미다. ‘나무’라는 말은 돌아간다, 귀의한다, 머문다, 내맡긴다는 뜻이며 아미타불은 진리, 자성자리를 의미한다. ‘나무아미타불’ 한소리에 자성을 돌이켜 그 자리에 머무는 것이 염불이다. 아미타불, 자성에 머물면 모든 사심잡념, 괴로움이 사라지고 언제나 여여한 극락을 누릴 수 있다. 자성이 아닌 경계에 흔들리는 마음과 자기 주견에 의지해서 살아가면 나무아미타불이 아니라 나무탐진치가 된다. 탐진치에 돌아가면 삶이 힘들고 아미타불에 돌아가 살면 언제나 극락이다. 

내게 찾아오는 모든 것은 진리의 작용임을 각성하여 아미타불에, 진리에, 자성에 툭 내맡기는 이는 삶이 평안하고 자유롭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물론 잠깐 흔들림이 없진 않겠지만, 속 깊이 거기에 빠져 살지 않고, 강물에 두둥실 떠내려가는 나뭇잎처럼 다 아미타불에 내맡기며 살아야 한다. 일어나는 일체의 일에 집착도 거부도 하지 않으며 진리에 툭 내맡기고 편안히 지내는 것이 마음공부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놈팡이로 살아도 좋다는 말이 아니다. 무엇을 원하고 그 결과를 얻기 위해 최선의 노력은 하되, 결과에 대해 모든 경우의 수를 다 열어놓고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간섭이나 원망이나 질책이나 자책 없이 흔쾌히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편안한 삶이며, 동시에 진정한 수행이다. 
 

나무아미타불,
무슨 일이 일어나든
자성에 머물며
일체를 다 내맡기는 것.

일체 일어나는 것들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진리작용이고 아미타불이 하는 일이고 자성이 하는 일이다. 매 순간 깨어서 열려있으며 어떤 결과도 온전히 받아들이는 마음이 수용이며 귀의이며 내맡김이며 나무아미타불이다. 진리 자리, 아미타불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이런 일이든 저런 일이든 그저 바람에 흔들리는 깃발일 뿐이다. 깃발이 오른쪽으로 흔들리든 왼쪽으로 흔들리든 좌우로 요란하게 흔들리든 그 깃발 자체가 내가 아니다. 바람에는 좋은 바람 나쁜 바람이 없이 진리인 내가 하는 일이다. 바람도 깃발도 흔들림도 다 우주 가득한 진공묘유인 진리의 작용이며, 자성인 나의 작용이며, 아미타불의 작용이다. 자성에 머물면, 아미타불에 돌아가면 일체는 묘유일 뿐 따로 문제 상황이 없다.

나무아미타불은 무슨 일이 일어나든 자성에, 진리에 머물며 일체를 다 내맡기고 내버려 두는 것이다. 깨달음의 자리, 불생불멸의 자리, 전체인 자성에 돌아가면 그 자리는 극락이다. 자타가 없으니 괴로움을 줄 상대도, 옳고 그름도, 모자람과 충족함도, 더럽고 깨끗함도, 잘하고 못함도 없다. 일체의 상대적 분별이 없어서 이런 상황이든 저런 상황이든 삶이 아무 문제가 없어지니 모든 순간이 극락이다. 오직 나 하나밖에 없어서 누가 누구를, 무엇이 무엇을 괴롭게 할 수 없다. 그 자리에 많이 머물수록 자유의 힘, 법력이 커지며 괴로움이 소멸되고 모든 문제가 일시에 녹는다. 자성 자리, 아미타불 자리는 병 없는 자리, 모든 아픔이 절로 낫는 약이 되는 자리다. 

나무아미타불 한 소리에 자성을 돌이켜, 걸으면서도 쉬면서도 노는 입은 나무아미타불! 

/변산원광선원

[2023년 8월 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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